고려아연, HMG글로벌 유상증자 일단 제동...현대차와 '로봇 동맹'강화 속살
정관 위반 논란에도 경영상 시너지 기대
로봇산업 연계, 신주 발행의 실질 목적?
글로벌 로봇 산업 경쟁 속 '고려아연' 변수
이동훈 기자
rockrage@naver.com | 2025-06-30 09:52:34
[하비엔뉴스 = 이동훈 기자] 고려아연이 현대차그룹 계열사인 HMG글로벌 대상 유상증자 무효 판결을 놓고 항소에 나섰다. 이런 가운데 이번 유증이 단순한 지분 방어를 넘어 로봇 산업에서의 전략적 협력 포석이라는 해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30일 고려아연 및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은 지난 27일 고려아연이 HMG글로벌을 대상으로 한 5200억 원 규모의 제3자 배정 유상증자에 대해 “정관상 외국 합작법인의 정의를 위반했다”며 신주 발행 무효 판결을 내렸다. 그러나 재판부는 이례적으로 신주 발행의 경영상 필요성 자체는 인정하며, 이번 유증이 ‘우호 지분 확보를 위한 수단’만은 아니었다고 판단했다.
고려아연 정관에 따르면 ‘외국의 합작법인에만 신주를 발행할 수 있고, 예외적으로 경영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경우에만 제3자에게 신주 배정이 가능하다’고 정하고 있다.
이번 사건은 지난해 3월 주주총회에서 영풍·MBK파트너스 측이 고려아연의 신주 발행을 문제 삼으면서 시작됐다. 당시 영풍 측은 HMG글로벌에 제삼자 배정 유상증자 방식으로 신주 104만5430주(지분율 약 5%)를 발행한 것이 경영권 유지·확대를 위한 사적 편익 도모에 해당한다며 위법성을 제기했다. 고려아연은 이에 대해 “전기차용 배터리 사업과 관련한 협력 등을 약속했다”며“경영상 필요에 따른 정당한 조치”라고 반박했다.
영풍은 이날 판결에 대해 “법원이 원고 승소 판결을 내릴 데 대해 환영한다”며 “최윤범 회장과 경영진은 위법한 신주발행으로 인하여 피해를 입은 모든 당사자들과 고려아연에게 사과하고 피해 회복을 위한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고려아연은 2022년부터 자사주 109만6444주(약 6%)를 한화, LG화학 등의 자사주와 맞교환하거나 한국투자증권에 매각해 우호지분을 27.31%까지 끌어올린 후 2023년 9월 HMG글로벌에 신주 5%를 추가로 배정함으로써 영풍 측보다 높은 지분율을 확보했다. 이로 인해 당시 기준 영풍 측의 고려아연 지분율은 31.57%였지만, 신주 발행 이후 고려아연 측의 지분율은 32.10%로 역전됐다.
이번 판결로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측은 일시적인 전략 수정이 불가피하게 됐다. 그러나 판결이 확정되기 전까지는 HMG글로벌의 신주 효력은 유지된다. 고려아연은 곧 항소를 통해 대응에 나설 예정이다. 게다가 현대차 즉 HMG글로벌은 주총에서 고려아연에 대한 의결권을 행사하지 않았으며 이사회에도 참여하지 않는 등 중립을 지켰다.
고려아연은 ‘하비엔뉴스’와의 통화에서 “경영상 목적과 HMG글로벌과의 전략적 관계를 항소심에서 더욱 명확히 소명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업계에서는 고려아연의 유상증자 대상인 HMG글로벌의 정체에 주목하고 있다. HMG글로벌은 현대차·기아·현대모비스가 미국 델라웨어에 공동 설립한 해외 투자법인으로,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지분을 실질적으로 보유하고 있다. 보스턴 다이내믹스는 세계 최고 수준의 휴머노이드 및 산업용 로봇 기술을 보유한 기업이다.
특히 현대차그룹은 최근 로봇·전지·자율주행을 미래 먹거리로 삼고 대규모 투자를 단행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에 고려아연이 이차전지 소재와 로봇 센서용 희소금속 분야에서 합류할 경우, HMG글로벌과의 협력은 단순한 지분 우군을 넘어 신사업 시너지를 창출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한 업계 전문가는 “삼성-현대-보스턴다이내믹스 축으로 이어지는 한국 로봇 얼라이언스에 고려아연이 소재·기술 공급자로 편입될 가능성이 있다”며 “정관 해석의 경계를 넘어 실질을 본다면 이번 유증은 정당한 경영전략”이라고 평가했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이미 로봇-전지-소재 삼각 얼라이언스가 치열하게 펼쳐지고 있다. 중국의 BYD는 Team China를 결성해 로봇 전지 내재화를 추진 중이고, 삼성은 삼성로봇TF와 반도체 연계 전략을 통해 속도를 내고 있다. 이 가운데 현대차는 보스턴다이내믹스 기반 로봇 플랫폼 구축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법조계 관계자는 “고려아연이 삼성-현대차-보스턴다이내믹스로 이어질 로봇 생태계의 공급자로 공식적으로 편입될 경우, 이번 유상증자는 단순한 방어책이 아니라 중장기적 성장 전략의 출발점으로 재해석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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