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밋빛 환상' 깨진 전기차 시장...내년 생존게임 본격화
미국 보조금 중단·중국 세제 혜택 축소 등 '정책 변곡점'
완성차 업계, '하이브리드 실리주의''멀티 파워트레인'선회
김재훈 기자
kjaehun35@gmail.com | 2025-12-26 14:53:27
[HBN뉴스 = 김재훈 기자] 글로벌 자동차 시장을 장악했던 전기차(EV) 만능주의가 가파른 변곡점을 맞이했다. 전 세계 전기차 판매량이 역대 최고치를 다시 쓰고 침투율이 27%를 돌파하는 등 외형적 성장은 지속되고 있으나, 주요국의 보조금 철회와 정책 수정이 잇따르며 업계는 하이브리드(HEV)와 수익성 중심의 ‘멀티 파워트레인’ 전략으로 빠르게 회항하고 있다.
블룸버그 뉴에너지 파이낸스(BNEF)에 따르면 올해 글로벌 전기차 시장은 전년 대비 약 20% 성장한 2140만 대를 기록할 전망이다. 전 세계 신차 4대 중 1대(침투율 27.3%)가 전기차인 시대가 열린 것이다. 하지만 세부 지표를 뜯어보면 지역별 온도 차가 뚜렷하다.
가장 극적인 변화가 나타나는 곳은 미국이다.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인플레이션감축법(IRA)에 따른 최대 7500달러의 세액 공제 혜택이 지난 9월부로 조기 종료되면서 시장은 급격히 얼어붙었다. 실제로 보조금 종료 직전인 9월 판매량은 전년 대비 37% 급증하며 ‘막차 수요’가 몰렸으나, 10월 이후 판매량은 전년 동월 대비 30% 감소하며 곤두박질쳤다.
포드(Ford)는 전기차 투자 철회로 인해 약 195억 달러의 대규모 손실을 상각 처리할 예정이고, GM 역시 투자 규모를 축소했다. 전문가들은 그간의 성장이 ‘테슬라’라는 특정 브랜드의 팬덤에 의한 ‘착시 현상’이었다고 분석하며, 일반 대중 브랜드들이 내놓은 전기차는 여전히 가격과 인프라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세계 최대 시장인 중국과 규제의 중심지인 유럽도 정책 수정에 나섰다. 중국은 전기차 침투율 52%로 1위를 달리고 있지만, 2026년부터 신에너지차 구매세 면제 혜택을 50%로 축소하고 PHEV의 순수 전기 주행거리 기준을 100km로 상향하는 등 질적 성장을 유도하고 있다.
유럽도 침투율 31%를 기록하며 견조한 성장세를 보였으나, 최근 EU 집행위원회는 ‘2035년 내연기관차 판매 금지’ 방침을 사실상 수정했다. 탄소 감축 목표를 100%에서 90%로 완화하고 합성연료(e-fuel) 사용을 인정하기로 하면서, 하이브리드와 내연기관의 생명 연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현재 시장의 무게중심은 다시 하이브리드로 이동하고 있다. 순수 전기차(BEV)의 충전 불편함과 보조금 중단에 따른 가격 부담을 느낀 소비자들이 내연기관의 편리함과 전기차의 경제성을 절충한 모델로 대거 ‘유턴’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주행거리 연장형 전기차(EREV)가 강력한 대안으로 부상했다. 엔진이 구동 대신 배터리 충전용 발전기로만 쓰이는 이 방식은, 1회 충전·주유 시 1000km 이상 주행이 가능해 장거리 수요가 많은 북미와 인프라가 부족한 신흥 시장에서 큰 호응을 얻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내년부터 제네시스와 기아 픽업트럭 등에 EREV를 전격 도입하며 파워트레인 다변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그런데 최근 중국에선 EREV의 판매량은 감소세다.
배터리 업계 또한 전기차 수요 둔화에 대응해 에너지저장장치(ESS)와 비(非) 모빌리티 분야로 수요처를 다변화하는 등 리스크 관리에 돌입했다. 올해 글로벌 배터리 사용량은 사상 처음으로 1TWh를 돌파할 것으로 보이지만, 포드가 LG에너지솔루션과의 계약을 해지하는 등 완성차 업계의 투자 속도 조절로 인한 여파는 피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업계 관계자들은 “전기차 시대라는 방향성은 유효하지만, 도달 시점은 완전히 재조정되었다”며 “2026년은 완성차 기업들이 하이브리드와 전기차 사이에서 얼마나 유연하게 생산 비중을 조절하느냐가 실적을 가를 분수령이 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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