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빛나는 순간' 고두심 "트라우마, 제주도-해녀 삼춘들 덕에 극복"
노이슬
hobbyen2014@gmail.com | 2021-06-27 14:16:09
[하비엔=노이슬 기자] 제주도 하면 생각나는 배우 고두심이 데뷔 50년차만에 '멜로'의 갈증을 해소했다. 바로 청량미 넘치는 제주도 바다를 배경으로 한 영화 <빛나는 순간>(감독 소문준)으로 극장을 찾는 것이다.
30일 개봉하는 영화 <빛나는 순간>(감독 소준문)은 해녀 고진옥(고두심)을 취재하기 위해 제주도에 온 다큐멘터리 PD 한경훈(지현우)의 사랑 이야기를 담은 힐링 로맨스다.
개봉에 앞서 북한산 자락 평창동의 한 카페에서 하비엔과 인터뷰를 가진 고두심은 "멜로에 대한 갈망은 늘 있었다. 깔끔하게 예쁘게 잘 나온 것 같다. 처음으로 과감하게 펼친 것 같다"고 소감을 전했다.
극 중 고두심이 분한 해녀 고진옥은 해녀들 중 숨을 가장 오래 참는 상급해녀로 기세스북에 오른 인물이다. 성질도, 물질도 제주에서 그를 이길 사람이 없다. 하지만 진옥은 시집 온 순간부터 물질을 시작, 현재는 병환으로 옴짝달싹도 못하는 남편 병수발을 들며 어릴 때 죽은 딸을 그리워하며 살아간다.
제주도하면 떠올리는 배우 고두심이지만, 사실 그녀는 중학교 때의 트라우마로 인해 수영을 못했다. 하지만 <빛나는 순간>에서 제주도 사투리는 물론, 수준급 수영실력과 물질을 선보여 모두를 놀라게 했다.
"중학교 때 물에 빠졌다가 간신히 살아 남아서 트라우마가 있다. 영화 <인어공주>에서 전도연 모친으로 나온다. 극 중 전도연 어머니가 옛날에 해녀였다. 대본에는 없었는데 리딩 후 감독님이 자맥질하는 것을 할 수 있냐고 물었다. 들어가기만 하면 나오는 얼굴은 전도연이니까 해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연습을 했다. 그때 너무 바빠서 연습을 많이 못했지만, 그래도 했다. 그때 폭풍 매미가 왔다. 바다가 다 뿌얘서 촬영이 불가했다. 결국 필리핀인가 동남아로 갔다.
일정이 빠듯해서 찍고 바로 보내준다고 해서 갔는데 가자마자 물 속에 들어갔는데 너무 무서웠다. 바다에 들어간 순간 뭐가 몸을 쏘는 느낌이었다. 공포에 질려서 얼굴이 하얗게 백짓장이 되니까 감독이 끄집어 내더라. 사람 몰골이 아니었다. 그래서 그 길로 비행기 타고 왔다. 대본에도 없긴 했지만 대역으로 대처했다."
하지만 고두심은 <빛나는 순간>을 위해 다시 한번 도전했다. 제주도를 대표하는 배우로써, 해녀를 그리고자 했던 그녀의 자부심이 트라우마를 넘어선 것이다.
"어린 시절 해녀 삼춘들과 보낸 추억이 있다. 해녀의 속 내면이 강하게 그려져야 하는 작품이니, 한국에서는 내가 제일 가까울 수가 있다고 생각했다. 감독님도 나를 놓고 썼다면서 '제주도하면 고두심'이고 '고두심의 얼굴이 제주도 풍광'이라고 막 꼬셨었다.
<빛나는 순간>은 대역으로 될 일이 아니었다. 제주도 사람이면 수영을 기초로 까는데 그걸 못하면 안될 것 같아서 연습을 많이 했다. 코로나19 때라서 멀리 가서 연습하고 제주도 바다에 들어갔다. 제주도 해녀 삼춘들이 많이 포진돼 있다. 저 삼춘들이 나를 죽게 놔두겠냐 싶어서들어갔다. 그 신뢰감에 한번 더 하겠다고 촬영을 더 하기도 했다. 이제는 그건 이겨냈다. 다른 바다에 가면 못할 것 같다. 제주도 바다에 가면 되는 것 같다(미소)."
해녀로써는 강인한 모습을, 경훈의 앞에서는 내면의 상처를 드러냄으로써 빛나는 순간을 맞이한다. 진옥과 경훈의 로맨스는 힐링이다.
"여자는 개인적으로도 그렇고, 나이 들어도 여자라는 끈은 놓을 수 없는 것 같다. 사랑을 하는데 남녀간의 끈이 아니라 자식 같아서 감정이 생기는 것도 있는 것 같다. 그 사람을 들여다보니 상처가 있었다. 어리지만, 내가 손을 잡아주면 치유될 것 같으면 사랑할 수 있는 것 같다.
여성으로써 제일 힘든 일을 하면서도 고래 심줄 같은 것을 잡고 똑같은 일을 반복하고 그런 쪽에서도 여자의 끈을 놓지 않았다는 것이 있었다."
경훈으로 분한 지현우와의 호흡은 어땠을까. 고두심은 "속이 깊다"며 지현우를 칭찬했다. "처음에는 약간 여성에 가까울 정도로 여리여리했는데 점점 강인하고 남성적인 것이 보였다. 1년만에 보니까 갑빠가 늘었더라. 몸을 잘 관리한 것 같았다. 지현우씨는 속이 깊다. 말 한마디를 해도 남성적인 모습을 잘 보여줬다. 전혀 무리가 없었고 좋았다.
시나리오를 보는 순간 여자는 여자라는 것을 놓으면 안되지만 놓아지지도 않는구나. 흔치는 않지만 특별한, 어떤 계기가 되면 있을 수 있는 일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다가갈 수 있었다."
극 중 두 사람의 로맨스는 아이유의 노래 '밤편지'로 그려진다. 상대가 그저 편안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그의 숙면을 바란다. 고두심은 양희은 버전의 '밤편지'로 투박하지만, 진정성을 전한다.
"아이유는 하이톤이고 속삭이는 톤이다. 감독님도 양희은씨가 투박하고 담백하게 던지는 것처럼 불렀으면 한다고 했다. 허밍 같이 한 것인데 연습을 많이 했다. 너무 좋았다. 아이유는 제가 선배가 영화에도 출연했고 하니까 그냥 쓰게끔 했다고 하더라. 대표님들도 감사하다고 하더라."
경훈의 카메라 앞에서 진옥이 제주도 4.3 아픔을 드러내는 씬은 <빛나는 순간>의 명장면이기도 하다. 제주 4.3 사건은 무고한 제주 도민들이 억울하게 희생당한 역사적인 사건이다. 고두심은 "그 아픔을 끄집어 낼 때는 아픈 표현이었다. 치유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다. 그나마 분이라도 풀렸으면 했다"고 말했다.
"48년도에 그 일이 발생했다. 나는 51년생이다. 내가 본듯, 겪을 듯하게 살아왔다. 많은 친척분들이 그렇게 돌아가셨고 할아버지 대에도 집 지키려다가 불에 타 죽기도 했었다고 했다. 할아버지가 그렇게 가셨다고 들었다. 엄마, 아버지 입을 통해서 친척 입을 통해 들어왔다.
제주도에는 친척의 제사도 참석한다. 그때 친척 집에 갓는데 이웃집도 다들 울고 있더라. 이 동네는 다 몰살당한 집이라고 하더라. 그 아픔이 얼마나 클지 어린 나이에서도 들으면서 커 왔다. 한 방에 일렬로 숨어있다가 총을 맞고 그 중 누군가는 죽고, 누군가는 그 안에서 구사일생 하기도 했다더라.
그 씬을 큐를 주니까 막 나오더라. 나도 신내린 줄 알았다. 무당의 신내림인가 전 스태프가 다 놀랐다 그러더라. 표현이 되긴 했구나. 그 양반들에 대해서 억울하게 죽은 그들에게 약간의 분이라도 풀리는 위로가 됐으면 하는 마음에 거기서 해봤다. 감독님이 써준 외의 대사가 줄줄이 나오더라. 본것처럼 느껴지고, 너무 듣고 살아와서 지금 우리 어머니 살고 있는 집에서 30분 걸어가면 동네가 있다. 거긴 친척들이 많이 사는데 그걸 토대로 했는데 몸에 담고 있었는지 거미 줄 풀려나오듯이 풀려나오더라. 써준 것 외에도 막하니까. 절절하니까. 감독님도 컷 소리를 못하더라. 더 하라고 해도 더 하겠더라."
고두심이 생각하는 영화 <빛나는 순간> 속 빛나는 순간은 어떤 장면일까. 그는 "경훈이 내 무릎에 누워 귀를 파주는 씬이다"고 말했다. "그 장면에서 살짝 비친 얼굴에 수줍음이 보였다. 그 장면이 너무 아프기도 했다. 그 씬 오래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지난 26일 방송된 JTBC '아는 형님'에는 고두심이 지현우와 동반 출연, 그간 '국민 엄마' 타이틀에 감춰왔던 흥을 대폭발 시키며 그야말로 스튜디오를 찢었다. 고두심은 '아는 형님' 출연에 대해 "내가 (내 자신을) 다 깠다. 재밌었다. 사적인 자리에서는 그렇게 논다. 속에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과거 크리스마스 시즌에 배우들끼리 놀 때는 방송국 소속이 다른 배우들이 나 노는 모습을 보고 오늘부터 팬 못하겠다고 하기도 했다. 흥이 있어서 배우하는 것 같다. 오늘날까지 얌전한 엄마만 하려니 고충이 있었다. 그런 역할은 안주시더라. 내 속을 못 읽었나보다.하하.
근데 내가 오랫동안 광고한 조미료 회사 담당 과장님과 장수봉 감독님은 아시더라. 내 눈의 장난기를 읽더라. 코미디 해도 된다고 하는데 순발력이 있어야 하더라. 대본 외우는 것 밖에 못해서 순발력은 떨어지는 것 같다."
최근 배우 박인환이 드라마 '나빌레라'를 통해 70대 발레리노를 연기하며 온 국민에 용기와 힐링을 안긴 바. 고두심은 "나는 아직 그 드라마를 못 보고 이야기만 들었다. 나도 무용을 전공했으니 발레는 잘 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도 나를 보여줄 수 있는 작품이 오면 새로운 시도를 해볼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사진=명필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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