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시카우가 부메랑으로"...전문약 편중 제약사, 약가 인하 '초비상'
제네릭·올드약 의존도 높을수록 직격탄 불가피
R&D 투자 늘리려 해도 '현금 보릿고개' 발목
허인희 기자
press@hobbyen-news.com | 2026-02-26 14:48:06
[HBN뉴스 = 허인희 기자] 정부의 고강도 약가 인하 정책 시행이 초읽기에 들어가면서, 전체 매출에서 전문의약품(ETC) 비중이 높은 국내 중견 제약사들의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그간 안정적인 수익원으로 자리 잡았던 이른바 ‘올드약(특허 만료 의약품)’과 제네릭(복제약)이 하루아침에 실적을 갉아먹는 뇌관으로 전락할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26일 제약업계에 따르면 보건복지부가 건강보험 재정 건전화를 명분으로 추진 중인 약가 인하 정책의 윤곽이 드러나면서 사업 다각화에 미진했던 제약사들을 중심으로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복지부가 지난해 11월 발표한 약가제도 개편안의 핵심은 올해 하반기부터 제네릭(복제약)의 약가 산정률을 기존 오리지널 의약품의 53.55%에서 40%대로 하향 조정하는 것이다.
업계 내에서는 식품, 화장품, 건강기능식품, 일반의약품(OTC) 등으로 수익 구조를 다변화한 대형 제약사들과 달리, 매출의 70~80% 이상을 전문의약품에 의존해 온 중견 제약사들이 이번 정책의 가장 큰 타격을 받을 것으로 전망이 나온다.
특히 수십 년 전 허가를 받아 특허가 만료된 기존 처방약 라인업에 매출의 상당 부분을 기대고 있는 기업일수록 단기적인 수익성 악화는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들 제약사가 처한 가장 큰 딜레마는 좁아진 ‘약가 우대(인하 면제)’ 문턱이다. 현재 정부는 매출액 대비 연구개발(R&D) 투자 비용이 상위 30%에 속하는 기업에 한해 약가 인하 대상에서 제외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문제는 일부 중견 제약사들은 R&D 비율을 단기간에 끌어올릴 만한 ‘현금 체력’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최근 글로벌 경기 침체와 운전자본(재고자산 등) 부담 증가로 인해 영업활동 현금흐름이 둔화된 기업이 적지 않다.
당장 가용할 수 있는 현금성 자산이 줄어들고 단기차입금 상환 압박이 커지는 상황에서, 불확실성이 높은 신약 R&D에 천문학적인 자금을 쏟아붓기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한 제약업계 관계자는 “현금 창출력이 떨어지는 상황에서 약가 인하를 피하기 위해 무리하게 빚을 내어 R&D 투자를 늘리기도, 그렇다고 가만히 앉아서 핵심 품목의 약가가 깎이는 것을 지켜보기도 힘든 진퇴양난의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이른바 투자금 부족, 약가 인하, 수익 축소, 현금 고갈 심화라는 악순환의 늪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다.
한국제약바이오협회 이사회도 “정부가 국산 전문의약품을 건보 재정 절감의 대상으로만 여겨 대규모 약가 인하를 밀어붙이면 R&D 투자가 위축될 것”이라며 “설비 투자 감소, 인력 감축, 공급망 약화 등 산업 전반의 기반이 무너질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다만, 이번 위기가 국내 제약업계의 체질 개선을 앞당기는 긍정적인 촉매제가 될 수 있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현재 다수의 중견 제약사들은 전반적인 현금 유동성 저하에도 기업의 장기 건전성을 보여주는 총 부채비율은 100% 미만의 비교적 안정적인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당장의 자금 융통에는 어려움이 따르지만, 위기를 버텨낼 기초적인 재무 체력은 갖추고 있다는 의미다.
결국 제약업계 복수의 관계자들은 제네릭 중심의 ‘안주형’ 영업 관행에서 벗어나, 선진적인 파이프라인 구축과 신약 개발 중심 ‘혁신형’ 구조로 탈바꿈할 수 있을지를 관건으로 꼽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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