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삼성가 장남 입대, 병역 의무 이행 공정의 척도
복무자 존중·회피자 불이익, 국가 정의
특혜 없는 군 복무만이 국가를 세운다
이동훈 기자
rockrage@naver.com | 2025-09-16 13:34:04
[HBN뉴스 = 이동훈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장남 이지호 씨가 9월 15일 해군 학사장교로 입대했다. 복수국적을 포기하고 39개월간 복무를 택한 결정은 분명 긍정적 메시지를 던진다. 그러나 이 선택을 단순한 ‘미담’이나 ‘홍보용 PR’로 소비한다면 병역의 공익성은 퇴색한다.
1990년대 한 정당 대표 아들의 병역 면제 사건은 “힘 있고 돈 있는 집안 자제는 군에 가지 않는다”는 불신을 폭발시켰다. 1998년 병역비리 사건 역시 재벌·의사·교수 등 특권층의 불법·편법을 드러내며 국민에게 깊은 좌절을 안겼다. 그 뒤 청년들 사이에는 병역 면제를 ‘신(神)의 아들’이라 비꼬고, 자신들을 ‘어둠의 아들’이라 칭하는 자조가 퍼졌다. “군대에 가면 손해”라는 냉소는 병역 가치 자체를 흔들었다.
병역은 단순한 개인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정의와 제도 신뢰를 가늠하는 시금석이기 때문이다. 서구에서는 지도층의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오히려 군 복무에서 드러난다. 영국 총리였던 캘러헌은 면제 사유에도 불구하고 자원 입대했고, 앤드루 왕자는 포클랜드 전쟁에 참전했다. 한국전쟁 때도 미국 상류층과 정치권 인사들의 자제가 전선에 투입돼 목숨을 잃었다. 그래서 미국인들은 한국을 ‘혈맹’이라 불렀다. 그 속엔 실제로 가족의 피가 묻었다는 역사적 기억이 있다.
강국은 늘 군인을 존중했다. 로마는 시민권과 토지를 군 복무와 연결했고, 오스만투르크는 ‘예니체리’를 국가의 핵심으로 대우했다. 현대의 미국 역시 군 복무를 리더십 자산으로 인정하며, 사회 전반에서 군인 출신을 우대한다. 때론 해외 파병에서 돌아온 군인에게 승객이 비즈니스석을 내어주고, 기내가 감사의 박수로 가득 차는 순간이 있다. 이는 공동체가 희생에 보답하는 집단적 존경의 표현이다.
이 같은 자긍심은 군인으로 하여금 스스로를 굳게 세우게 하고, 나라를 위해 몸을 던져야 하는 전선으로 기꺼이 나아가게 만든다.
2025년 현재 우리 군 병력은 45만 명으로 줄었다. 6년 전보다 11만 명이 감소하며, 최소 필요 병력 50만 명 선도 무너졌다. 간부 충원율도 급락했다. 병력 기반이 흔들린 상황에서 병역의 공정성까지 무너지면, 안보와 신뢰는 동시에 금이 간다.
따라서 군 복무는 ‘나라를 지키는 신성한 의무’이자 자긍심을 부여하는 제도여야 한다. 복무자에겐 분명한 보상과 사회적 존중이 주어져야 하고, 회피자에겐 응분의 불이익이 따라야 한다.
누구나 납득할 수 있는 상식적 기준에 따라 불가피한 신체적·환경적 사유로 면제되는 경우는 존중해야 한다. 하지만 그에 대한 과도한 보상이나 특혜는 허용되어선 안 된다.
병역 문제는 곧 대한민국 공동체의 정의를 가늠하는 시험대다. 병역만큼은 궤변이나 편법이 통하지 않는다는 원칙, 그리고 복무자에게는 사회적 존중과 보상이 반드시 따른다는 약속이 지켜질 때, 대한민국은 신뢰 위에 선 지속가능한 국가로 나아갈 수 있다.
“군화의 무게가 곧 대한민국의 무게다. 이 단순한 진실을 지킬 때만, 우리의 국방도, 정의도, 미래도 흔들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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