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미 수출 기지 멕시코, FTA 미체결 국 최대 50% 관세...한국 기업 비상
자국산업 보호 명분, 1463개 품목 선정
트럼프 정부, 중국 우회 통로 압박카드
박정수 기자
press@hobbyen.co.kr | 2025-09-12 16:57:48
[HBN뉴스 = 박정수 기자] 한미 관세협상이 교착 상태에 빠진 가운데 이번엔 '멕시코 관세'라는 다른 암초가 부상하고 있다. 멕시코 정부는 자국 산업 보호를 명분으로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지 않은 국가를 상대로 최대 50%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예고했다.
한국은 중남미 최대 교역국인 멕시코와 FTA를 체결하지 않아 관세부과 대상에 오를 수 있다. 미국향 수출 물량을 멕시코에서 생산하는 한국 기업으로서는 비용 부담을 짊어질 상황에 내몰렸다.
10일(현지시간) 멕시코 정부는 국가 경제 발전을 선도할 수 있는 자동차·부품, 철강·알루미늄, 플라스틱, 가전, 섬유 등 17개 전략적 분야에서 1463개 품목을 선정해 세계무역기구(WTO) 규정에 저촉되지 않는 범위 안에서 현재 0∼35%대 관세율을 최대 50%까지 상향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멕시코는 한국의 최대 중남미 교역국이다. 한국의 지난해 멕시코 수출액은 136억달러(약 19조원)로 2020년 82억4000만달러 대비 약 65% 증가했다.
국내 기업들이 멕시코를 자동차와 철강 등의 ‘북미 제조 전진기지’로 활용하면서 중간재 수출이 급증했기 때문이다. 멕시코에 진출한 국내 기업은 삼성전자, LG전자, 기아, 포스코 등 500개사가 넘는다. 한국 기업들은 2022년부터 매년 멕시코에 1조원 넘게 투자하고 있다.
복수의 재계 관계자들은 "한국 기업들이 멕시코에 투자를 확대한 이유는 미국의 대중 무역 제재가 본격화하면서 미국으로 들어갈 때 무관세 혜택을 받을 수 있고 저임금 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입을 모은다.
이런 상황에서 멕시코의 관세 인상 발표에 현지에 수출하거나 진출한 기업들이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다.
당장 한국의 대멕시코 수출 1·2위 품목인 자동차 부품과 철강이 타격을 받을 수 있다. 기아의 연산 40만대 규모의 공장이 멕시코에 있는데 상당수의 부품은 한국에서 생산 후 멕시코로 수출돼 조립되는 구조인데 관세 부담이 늘어날 경우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철강 업계도 긴장감이 역력한 모습이다. 한국은 멕시코의 미국, 브라질, 일본에 이은 4번째 철강 주요 수입국이다.
가전 업계도 멕시코 공장에서 생산하는 제품의 시장경쟁력이 떨어질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기는 마찬가지다. 삼성전자와 LG전자 모두 멕시코에서 TV와 냉장고·세탁기 등을 생산해 미국으로 수출하고 있다. 멕시코 현지 공장에서 한국 등으로부터 수입하는 부품과 원자재에 관세가 상향될 경우 비용 부담을 떠안아야 한다.
관세 인상에는 멕시코 정부가 중국의 교역 관계를 제한하도록 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정부의 압박을 일부 수용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미국 주요 언론들은 트럼프 정부가 중국과의 교역 관계를 제한하도록 멕시코를 압박하고 있다고 보도하고 있다. 중국이 미국의 고율 관세를 피하기 위한 우회 수출 통로로 멕시코를 이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조처도 포함돼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7월 31일(현지시간) 멕시코 제품에 대한 관세율을 압박하는 것도 이를 뒷받침한다. 멕시코는 미국을 상대로 최대교역국이자 무역흑자를 내고 있다. 이런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4월부터 멕시코가 마약으로 분류되는 펜타닐의 미국 유입을 막기 위해 충분한 조치를 하지 않고 있다며 25%의 관세를 부과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멕시코에 이민자 억제와 마약 밀매 차단 등에 대한 '더 많은 조치'를 요구하면서 이런 요구가 관철되지 않으면 멕시코에 대한 관세율을 30%로 인상하겠다고 경고했었다. 미국과의 교역현실을 감안할 때 멕시코로서는 이러한 미국 정부의 움직임이 막대한 부담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결국 미국은 협상을 통해 중국 압박카드를 제시했고 관세를 올리지 않고 오는 10월말까지 현재의 관세율을 그대로 적용하기로 합의한 것이다.
한국 정부는 멕시코의 관세 인상과 관련해 현재로선 우리 기업들에 미칠 영향을 예단하기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아울러 한국 통상당국은 관세율이 인상되더라도 멕시코 정부가 지금까지 해왔던 대로 한국산 수출품에 관세 감면 프로그램(IMMEX·PROSEC)을 적용할 경우 우리 기업들의 피해가 예상보다 크지 않을 것이라는 진단도 하고 있다.
재계는 한국과 멕시코간 FTA가 조속히 체결되기를 고대한다. 경쟁국인 일본의 경우 이미 멕시코와 FTA를 체결한 상태다. 한국과 멕시코는 2006년부터 FTA 전 단계인 전략적 경제보완협정(SECA) 논의를 개시했지만 2008년 협상이 중단됐다. 무엇보다 양국 FTA는 멕시코 측이 한국에 요구하는 농산물 개방건이라는 장벽을 넘지 못하고 있다는 게 재계의 진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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