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BN뉴스 = 홍세기 기자] 호반그룹 계열사의 주요 결재 문건 수십여 개에서 김상열 회장의 것으로 추정되는 전자 서명을 발견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뉴스타파는 지난 28일 공정거래위원회가 김 회장에 대한 면죄부의 근거로 제시한 품의서에서 영어 알파벳 S 또는 한글 자음 'ㅅ(시옷)'을 형상화한 전자 서명을 발견했다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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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반그룹 김상열 회장과 김대헌 사장 부자. [사진=연합뉴스] |
이 전자 서명은 대표이사나 부회장이 최종 승인한 문서에 날인됐으며, 보안등급을 구분한 칸이 없음에도 전자 서명이 들어간 경우도 있었다.
이에 대해 호반그룹 측은 전자 서명의 주인이 김 회장이라는 사실을 부인하지 않았다.
그러나 호반그룹 측은 "김 회장이 최대 주주로서 주요 사안에 대해 확인한 것이며, 결재와는 무관하다"고 강조했다.
호반그룹 관계자는 김 회장의 전자 서명이 공식적인 결재 프로세스가 아닌 주주로서 정보 공유 차원이었다고 설명했다.
김 회장은 공정위에 제출한 서면 답변에서도 "택지 명의 변경, 택지 수주 업무 등 개발 사업 관련 최종 의사결정은 전문경영인인 대표이사가 하고 김상열(회장)은 사후 보고 정도만 받았다"며 "이미 사업이 완료된 후에 보고를 받는 것이기에 업무 지시를 하지는 않았다"고 주장했다.
다만 뉴스타파 측은 여러 문서를 검토한 결과 김 회장의 전자 서명이 대부분 대표이사 등이 결재한 당일 입력됐고, 전자문서 결재시스템에는 분명한 '승인' 절차인 것으로 나타났다고 반박했다.
이에 호반그룹 관계자는 "해당 보도에 대한 민·형사상 책임을 묻겠다"며 강경 대응 방침을 보였다.
◆ '벌떼입찰'로 공공택지 확보...2세 회사에 대규모 양도
이번 전자 서명 발견은 2023년 8월 참여연대가 김상열 회장과 그의 두 아들을 업무상 배임 혐의로 검찰에 고발한 사건과 관련 있다.
앞서 공정위는 2023년 6월 호반건설의 부당 내부거래에 대해 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시정명령과 함께 과징금 608억원을 부과했다. 이는 삼성웰스토리(2349억원), SPC그룹(647억원)에 이어 부당 지원 과징금 중 역대 3번째 규모다.
공정위 조사 결과 호반건설은 2013년 말부터 2015년까지 건설사들의 공공택지 수주 경쟁이 치열했던 시기에 다수의 계열사를 설립하고 비계열 협력사까지 동원해 추첨 입찰에 참가시키는 이른 바 '벌떼입찰'을 통해 많은 공공택지를 확보했다.
호반건설은 이 과정에서 김상열 회장의 두 아들이 소유한 19개 회사가 공공택지 입찰에 참여할 수 있도록 1조5753억원의 신청금을 414회에 걸쳐 무상으로 대여했다.
또한 호반건설은 계열사와 비계열사를 동원해 낙찰받은 23개 공공택지 매매계약의 매수자 지위를 장남 김대헌 기획총괄사장 소유의 호반건설주택과 차남 김민성 전무 소유의 호반산업 등에 대규모로 양도했다.
23개 공공택지 시행사업에서 발생한 분양매출은 5조8575억원, 분양이익은 1조3587억원에 달했으며, 이는 모두 2세 회사로 귀속됐다.
이 밖에도 호반건설은 2세 회사가 시행하는 40개 공공택지 사업의 PF대출 총 2조6393억원에 대해 무상으로 지급보증을 제공했다. 2세 회사들은 자체 신용으로는 금융기관으로부터 대출을 받기 어려웠으나 호반건설의 지급보증을 통해 사업자금을 조달할 수 있었다.
◆ 10년간 치밀하게 진행된 경영권 승계
김상열 회장의 장남 김대헌 사장으로 경영권 승계는 10년에 걸쳐 치밀하게 진행됐다.
2003년 12월 분양대행업을 주요 사업으로 하는 비오토가 설립됐으며, 2008년 자본금 5억원인 비오토의 감사보고서에 당시 대학교 2학년 나이인 21살의 김대헌 부사장이 지분율 100%를 가진 최대주주로 처음 등장했다.
비오토는 호반건설의 일감 몰아주기를 통해 성장했으며 호반비오토, 호반건설주택, ㈜호반으로 수차례 사명을 변경했다.
특히 김 회장이 장남 후계 승계를 위해 설립한 비오토건설의 순자산은 2003년 4900만원에서 2017년 말 2조3190억원으로 급증했다.
종국에는 2018년 그룹의 지주사 격인 호반건설과 합병해 김대헌 사장이 호반건설 지분 54.7%를 보유한 최대주주로 등극했다. 비오토를 만든지 정확히 10년 만이었다.
합병 당시 31세였던 김 사장은 증여세를 단 한 푼도 내지 않고 3조원대 자산의 호반건설을 차지했다.
◆ 과징금 일부 취소 판결...검찰 수사는 표류
공정위의 과징금 부과에 불복한 호반건설은 행정소송을 제기했고, 서울고등법원은 2025년 3월 27일 과징금 608억원 중 365억원을 취소하고 243억원만 납부하면 된다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공공택지 전매 행위와 입찰신청금 무상대여 행위 등 2건에 대한 과징금 부과를 취소했으나, 무상 지급보증과 건설공사 이관 등은 부당지원으로 인정했다.
한편 참여연대는 2023년 8월 김상열 회장과 장남 김대헌, 차남 김민성 및 호반건설 이사들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업무상 배임 혐의와 상법 제622조 제1항 위반(이사 기타 임원 등의 특별배임죄) 등의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다.
공정위는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의 공소시효가 5년에 불과해 이미 공소시효가 지났다는 이유로 김 회장을 검찰에 고발하지 않았다. 그러나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업무상 배임 혐의의 공소시효는 배임으로 인한 이득액이 50억원 이상일 경우 최장 15년이다.
참여연대는 고발 이유에 대해 "호반건설의 벌떼입찰과 업무상 배임 등은 단순히 부당한 입찰이나 공공택지 개발이익의 사유화를 넘어 그 이익을 회장의 자녀들에게 귀속시키고 회사에는 이익을 포기하도록 하거나 지급보증 등 위험을 감수하도록 하는 경제범죄"라고 지적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검찰은 김 회장 일가의 업무상 배임 혐의에 대한 고발 사건을 2년 넘게 결론을 내리지 않고 있다.
참여연대에 따르면 일부 행위는 이미 공소시효가 임박하거나 도과한 상태다. 참여연대는 올해 4월 성명을 내고 "검찰은 더 이상 침묵하거나 시간을 끌지 말고, 호반건설 총수일가의 조직적 배임 혐의에 대해 철저한 수사와 신속한 공소제기로 응답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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