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ITC, 넷리스트-삼성 특허 분쟁에 SK하이닉스 영업기밀 제출 요구 논란 증폭
고대역폭메모리(HBM) 설계와 원가, 생산능력 등 핵심 정보 제출 요구
피조사 대상 아닌데 타 회사 특허 침해 여부 판명 위한 자료 내놓아라?
홍세기 기자
seki417@daum.net | 2026-02-12 11:11:07
[HBN뉴스 = 홍세기 기자]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가 삼성전자와 미국 넷리스트(Netlist)의 특허 분쟁을 심리하는 과정에서 SK하이닉스에 고대역폭메모리(HBM) 설계와 원가, 생산능력 등 핵심 영업기밀 제출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증폭되고 있다.
SK하이닉스는 이번 337조(불공정무역행위) 조사 사건의 피조사인은 아니지만, 사실상 ‘3자(Third party) 참고인’ 지위로 삼성전자 제품의 특허 침해 여부를 가리기 위한 자료를 내놓으라는 요구를 받은 셈이다.
12일 업계에 따르면, ITC의 이번 조치는 넷리스트가 먼저 ITC에 “SK하이닉스의 HBM 제품·투자 관련 자료를 확보해 달라”고 요청한 데 따른 것이다. 넷리스트는 2025년 9월 삼성전자·구글·슈퍼마이크로를 상대로 DDR5·HBM 관련 6개 특허 침해를 주장하며 ITC에 제소했고, ITC는 같은 해 12월 ‘특정 DRAM 디바이스 및 이를 포함한 제품’에 대한 정식 조사를 개시했다.
핵심은 넷리스트가 SK하이닉스를 ‘자사 특허의 합법적 라이선스 사용자’로 내세우며, 삼성전자의 미국 HBM·DDR5 수입 금지 요청을 정당화하는 데 활용하려 한다는 점이다.
넷리스트와 SK하이닉스는 과거 서버 DRAM 모듈 특허 분쟁 끝에 2021년 크로스 라이선스·로열티 지급·제품 공급을 포괄하는 합의를 맺은 바 있다.
넷리스트는 이 합의를 근거로 “SK하이닉스는 특허를 정식 사용하고 있고, 삼성전자는 무단 사용했다”는 구도를 강조하며, ITC의 ‘국내 산업(domestic industry) 요건’ 충족 논리를 보완하려는 것으로 해석된다.
ITC는 SK하이닉스에 HBM 설계 구조·동작 방식은 물론 인건비·시설비를 포함한 원가 내역, 생산능력, 향후 증설 계획까지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삼성전자 제품이 미국에서 수입 제한을 받을 경우 SK하이닉스가 어느 정도 물량을 대체 공급할 수 있는지에 대한 자료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에서는 “피조사인도 아닌 기업에 HBM 사업의 ‘설계도’와 ‘원가 구조’를 요구하는 것은 과도하다”는 우려가 나온다.
삼성전자와 넷리스트의 갈등은 이미 여러 차례 법정 공방을 거쳤다. 넷리스트는 미국 텍사스 연방법원 배심에서 삼성전자를 상대로 두 차례에 걸쳐 총 4억달러가 넘는 손해배상 평결을 받아냈고, 연방순회항소법원(CAFC)도 넷리스트 핵심 특허의 유효성을 잇달아 인정해 주며 넷리스트 손을 들어줬다.
이후 넷리스트는 HBM 적층 구조 특허까지 쟁점에 올리며 소송 범위를 HBM·DDR5로 확대한 상태다.
이번 ITC 337조 사건에서 넷리스트는 삼성전자 HBM·DDR5와 이를 탑재한 서버 완제품의 미국 수입 배제를 요구하고 있다.
ITC는 통상 조사 개시 후 약 15개월 이내에 예비·최종 결정을 내리게 되며, 수입배제명령이 내려질 경우 삼성전자뿐 아니라 미국 내 주요 고객사와 서버·AI 생태계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SK하이닉스로서는 ITC 요청에 협조할 경우 삼성전자와의 미묘한 갈등 요인을 떠안을 수 있고, 거부하거나 범위를 크게 축소하면 미국 통상·소송 환경에서 ‘비협조적 기업’이라는 인식을 살 수 있는 딜레마에 놓였다.
업계에서는 “국내 메모리 1·2위가 모두 미국 NPE(특허전문 소송기업)의 공세와 ITC 절차에 직·간접적으로 노출된 상황이다”라며 “정부·업계 차원의 영업기밀 보호 원칙과 ITC 대응 가이드라인 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같은 넷리스트와 삼성전자·SK하이닉스 간 특허 갈등은 수년 전부터 이어져 온 장기전이다. 먼저 넷리스트와 SK하이닉스는 서버 DRAM 모듈 특허를 둘러싼 각종 소송 끝에 2021년 4월 특허 크로스 라이선스와 로열티 지급, 제품 공급을 묶은 포괄 합의를 체결하며 1차 분쟁을 마무리했다.
이 합의로 SK하이닉스는 넷리스트 특허를 정식 라이선스받은 ‘합법 사용자’ 지위에 올랐고, 이는 훗날 넷리스트가 ITC에서 ‘국내 산업(domestic industry) 요건’을 주장하는 근거로 활용되고 있다.
반면 삼성전자와 넷리스트의 관계는 갈수록 악화됐다. 넷리스트는 미국 텍사스 연방법원에서 잇따라 소송을 제기해 2023년 4월 첫 재판에서 약 3억 315만달러, 2024년 말 두 번째 재판에서 1억 1,800만달러 등 두 차례에 걸쳐 총 4억달러가 넘는 손해배상 평결을 이끌어냈다.
여기에 2025년 3월과 12월 연방순회항소법원(CAFC)이 넷리스트 핵심 특허(‘523·‘608 특허)의 유효성을 잇따라 인정하면서, 넷리스트의 공격 명분은 한층 강화됐다.
이 같은 판결을 바탕으로 넷리스트는 분쟁 무대를 ITC로 넓혔다. 2025년 9월 넷리스트는 삼성전자와 구글, 슈퍼마이크로를 상대로 DDR5와 HBM 관련 6개 특허 침해를 주장하며 미국 ITC에 337조(불공정무역행위) 조사를 청구했고, ITC는 같은 해 12월 ‘특정 DRAM 디바이스 및 이를 포함한 제품’에 대한 정식 조사를 개시해 삼성전자와 미국법인, 구글, 슈퍼마이크로를 피조사인으로 지정했다.
이후 ITC가 넷리스트의 신청을 받아들여 2026년 2월 SK하이닉스에 HBM 설계·원가·생산능력과 미국 내 대체 공급 능력 등 방대한 정보를 제출하라고 요구하면서, 과거 넷리스트와 합의했던 SK하이닉스까지 삼성전자의 ITC 특허 분쟁 한가운데로 다시 끌려 들어간 모양새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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