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부품까지 탈한국화...국내 1만 협력사 생존 패닉
현대차, 부품 현지화율 48.6%…"미국식 조달로 전환 가시화"
민간 자율 아닌 정책 실패, 산업 전환 대응 없는 산업·중기부
이동훈 기자
rockrage@naver.com | 2025-08-04 14:02:35
[하비엔뉴스 = 이동훈 기자] 현대자동차가 미국 관세 대응을 명분으로 부품 조달 전략을 전면 개편을 예고하면서, 국내 1만여 협력업체들이 생존 위기에 내몰리고 있다. 미국 현지 조달 확대는 결국 ‘조용한 탈한국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정부는 이 같은 산업 전환에 사실상 손을 놓고 있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대기업과 국민 간의 암묵적 사회계약이 무너지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대차는 올해 2분기 매출액은 역대 최대 수준의 하이브리드 판매 및 금융 부문 실적 개선 등을 바탕으로 전년 동기 대비 7.3% 증가했다. 반면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보다 15.8%나 급감한 3조 6016억원으로 집계됐다. 영업이익률은 7.5%를 기록했다.
현대차그룹은 실적 부진의 원인으로 지난 4월부터 부과된 미국 정부의 고율 관세를 지목하며, 부품 조달 전략의 대대적 개편에 나섰다. 현대차는 전사 차원의 태스크포스(TFT)를 가동해 약 200여 개 부품을 대상으로 최적의 현지 조달 방안을 검토하고 있으며, 중장기적으로는 부품 현지화율을 높이는 방향으로 전략을 선회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실제로 현대차·기아의 미국 내 부품 현지 조달률은 48.6%로, 테슬라(68.9%)와 일본계 완성차 브랜드인 혼다(62.3%), 도요타(53.7%)에 비해 낮은 수준이다. 그룹 전체적으로 수익성 악화를 막기 위한 공급망 재편이 불가피해진 것이다.
이에 따라 국내 부품업계의 대미 수출은 직접적인 타격을 입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한국의 대미 자동차 부품 수출액은 82억2000만달러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는데, 그중 60∼70%가 현대차·기아에 납품한 물량에서 나왔을 것으로 부품업계는 추산한다.
국내 부품업계는 이 같은 조달전략 변화가 사실상 ‘조용한 공급망 탈한국화’로 이어질 것을 우려한다. 현대차는 글로벌 완성차 기업으로 도약하며 오랜 기간 국내 부품사들의 기술력과 납기 대응력에 의존해왔다. 그 결과, 중소기업들은 대기업 한 곳에 종속된 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지금은 그 기반이 송두리째 흔들리고 있는 셈이다.
문제는 이러한 구조적 전환이 정부의 묵인 아래 무비판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산업통상자원부와 중소벤처기업부는 이 같은 현대차의 결정에 대해 어떤 입장도 내놓지 않고 있다.
경제정책 전문가들은 부품 공급망은 더 이상 ‘민간의 문제’로만 치부할 수 없는 공공재의 영역이라고 지적한다. 특히 IRA와 같은 해외 산업정책이 국내 제조업 기반에 실질적 타격을 주고 있는 현 시점에서는, 정부가 민간의 자율 뒤에 숨을 것이 아니라 산업 정책적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는 요구가 거세지고 있다.
실제로 산업부는 현재까지 국내 자동차 공급망 전환에 대한 실태조사조차 착수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피해 현황, 중소기업의 대응 역량, 일자리 전환 대책 등은 공백 상태로 남아 있다.
업계 안팎에서도 이 같은 무대응을 두고 공급망 공공성에 대한 정부 인식이 전무한 결과라는 비판을 제기한다.
더 심각한 것은 대기업과 국민 간의 ‘암묵적 사회적 계약’이 무너지고 있다는 점이다.
국민은 지난 수십 년간 현대차를 비롯한 대기업에 각종 세제혜택과 규제완화, 공공자금 지원 등의 특혜를 부여해왔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오너일가의 부를 축적하라고 한 것이 아니었다. 낙수를 전제로, 국내 산업 생태계를 함께 키우자는 사회적 합의의 일환이었다.
중견 부품업체 한 관계자는 “우리 납품사들은 현대차가 세계적인 기업이 될 수 있도록 20~30년간 ‘묵묵히 같이 버텨준 파트너’였다”며 “이제 와서 북미 진출을 이유로 국내 기반을 버리면, 남는 건 오너와 주주의 이익뿐”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편, 본지는 이번 사안에 대한 현대차 측의 입장을 듣기 위해 연락을 시도했으나 공식적인 답변을 받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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