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위조작정보근절법' 본회의 통과...질서 확립인가, 합법적 통제인가
속도전 입법 논란 속 '표현의 자유' 시험대 올라
핵심 내용...'5배 배상'과 '사실 적시 처벌 강화'
최종판단은 아직, 헌법재판소에서 결정될 전망
이동훈 기자
rockrage@naver.com | 2025-12-24 13:43:45
[HBN뉴스 = 이동훈 기자] 여야의 극한 대치 속에 허위·조작정보 규제를 대폭 강화하는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한국 사회는 다시 한 번 ‘질서 확립’과 ‘표현의 자유’ 사이의 첨예한 경계선 위에 섰다. 법안은 통과됐지만, 논쟁은 오히려 지금부터라는 평가가 나온다.
24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에서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 이른바 ‘허위·조작정보근절법’이 재석 177명 중 찬성 170명, 반대 3명, 기권 4명으로 가결됐다. 위헌성 논란이 제기된 법안이 처리되면서, 정치권의 긴장은 한층 고조됐다.
이번 개정안은 입법 과정부터 논란의 중심에 섰다. 더불어민주당은 8월 당 지도부 출범 직후 검찰·언론·사법 개혁 특위를 가동하며 “전광석화 처리”를 공언했고, 실제로 상임위 논의부터 본회의 통과까지 불과 2주 만에 절차를 마무리했다.
애초 징벌적 손해배상 도입은 언론중재법 개정을 통해 추진됐으나, “언론만을 겨냥한 입법은 부적절하다”는 대통령실 기류 이후 적용 범위를 인터넷 전반으로 확대한 정보통신망법 개정으로 선회했다. 그 결과 언론사뿐 아니라 유튜버·1인 미디어·플랫폼까지 포괄하는 ‘전면 규제’ 체계가 구축됐다.
개정안의 골자는 불법 정보와 허위·조작정보의 개념을 법률에 명시하고, 이를 유통해 타인에게 손해를 입힌 경우 손해액의 최대 5배까지 배상하도록 한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다. 비방 목적의 사실 적시 명예훼손에 대해서는 3년 이하 징역 또는 3천만 원 이하 벌금형을 부과하도록 했다.
여권은 “허위·조작정보가 민주주의와 사회 신뢰를 근본적으로 훼손하고 있다”며 “플랫폼 환경 변화에 맞춘 최소한의 안전장치”라고 강조한다. 민주당은 고의성 요건과 무분별한 소송을 막기 위한 특칙을 뒀다는 점을 들어 위헌성 우려는 해소됐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야권과 언론·학계의 시각은 다르다. 국민의힘은 필리버스터까지 동원해 “허위의 판단 기준이 모호해 권력 비판과 감시 기능을 위축시킬 수 있다”며 ‘국민 입틀막법’이라고 규정했다. 특히 사실 적시 명예훼손 처벌 강화는 공익적 보도까지 위축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집중된다.
법률 전문가들이 지적하는 핵심은 ‘공익’ 개념의 불명확성이다. 헌법재판소는 2010년 ‘공익을 해할 목적’으로 허위정보를 유포하면 처벌하도록 한 전기통신기본법 조항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린 바 있다. 추상적·자의적 해석이 가능한 개념으로 표현의 자유를 제한할 수 없다는 취지였다. 이번 개정안 역시 유사한 헌법적 시험대에 오를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
개정안은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에 허위·조작정보를 반복 유통한 플랫폼에 대해 최대 10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는 권한도 부여했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방미통위가 정권 비판적 언론과 플랫폼을 선별적으로 압박하는 통로로 작동할 수 있다는 의심도 제기된다.
논란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민주당 언론특위는 이번 망법 통과를 전제로, 내년 초 유사한 취지의 언론중재법 개정안까지 처리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상태다. 언론계에서는 “정보통신망법과 언론중재법이 동시에 작동할 경우, 언론은 상시적인 소송 리스크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며 구조적 위축을 우려한다.
권력자나 대기업이 징벌적 손해배상을 무기로 ‘전략적 봉쇄 소송(SLAPP)’을 남발할 가능성도 지적된다. 민주당은 중간판결 특칙으로 남용을 막겠다고 했지만, 재판청구권 침해 소지 등으로 실효성 논란이 남아 있다.
법안은 본회의를 통과하며 입법 절차상 마침표를 찍었지만, 실질적인 평가는 이제 시작이다. 헌법소원 제기 가능성이 거론되는 가운데, 최종 판단은 헌법재판소로 넘어갈 가능성이 크다.
‘허위·조작정보로부터 사회를 보호해야 한다’는 명분과 ‘표현의 자유는 민주주의의 최후 보루’라는 원칙이 충돌하는 지점에서, 이번 법안은 한국 민주주의의 내구성을 시험하는 리트머스지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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