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卽說-8] 묘심 종정, “못 다 이룬 사랑이 강물되어 흐르면”

편집국 / 2024-10-22 09:54:08

[하비엔뉴스 = 편집국]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 속에서 처음 보는 누군가를 어디서 본 듯한 경험을 한 적이 있을 것이다. 이는 과학적으로도 해명할 수 없는 신비하고 초자연적인 현상으로, 영화 <파묘>의 인기와 더불어 지난 2002년 출간된 <빙의>가 다시금 회자되고 있다. 당시 베스트셀러에 올랐던 <빙의>는 한국불교법성종의 큰스님인 묘심(妙心) 종정이 K-컬처의 주역으로 ‘오컬트’를 이미 오래 전에 내다봤다는 점에서 주목 받고 있다. 다음은 묘심(妙心)종정의 지면(紙面) 설법 그 여덟 번째 ‘못 이룬 사랑이 강물되어 흐르면 구천(九泉)을 헤매는 원혼(寃魂)이 되더라'를 연재한다.

 

 용의 샘과 용다리.

 

지난 밤 거센 비바람이 창문을 세차게 뒤흔들더니 계절이 바뀌려는가 보다. 산까치에게 내어준 탐스런 주홍빛 감 서너 개가 잎새를 떨군 가지 위에  매달려 있다. 붉게 물든 구절초는 해마다 고즈넉한 산사 뜰에 만발한데 질긴 생명력으로 짙은 여운을 남기는 가을꽃 만큼 겨울 준비를 해야 할 시기에 문득 떠오르는 여인의 사연이 있어 소개하려 한다.

 

유난히 길었던 태풍이 막 지나가고 청명한 어느 가을날이었다. 미모의 30대 여인과 초췌한 70대의 어머니가 나를 찾아왔다. 부유한 가정 부족할 것 없는 부모 슬하에서 살아온 딸은 5세 무렵 갑자기 산만해지고, 지나치게 폭력적이며, 유난히 고집을 부리고, 한밤중에도 잠을 깊이 못 자고, 한 번 울기 시작하면 몇 시간씩 보채어 부모의 애간장을 태웠다고 했다. 

 

초등학교 4학년부터는 그 정도가 심각해져 대학병원 정신과에 입원도 하고, 현재까지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지만 증상은 더욱 악화되어 도저히 견딜 수가 없다고 하소연했다. 지성미가 넘치는 어머니는 애지중지 키워온 딸이 나날이 변해가는 모습을 보는 게 너무 고통스러워 우울증과 불안감으로 삶의 의욕마저 잃었다고 했다. 

 

딸은 30대 후반으로 세 번의 결혼과 세 번의 이혼으로 2남 1녀를 낳았으나, 아이들에게는 관심조차 없고, 친정에 맡겨 놓은 채 통제할 수 없는 심각한 행동을 일삼아 부모의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매사에 어린애 같은 언행과 불면증으로 밤낮이 바뀐 생활은 물론, 어디에도 집중을 못하고, 낭비벽이 심해 1 년에도 외제차를 몇 대씩 계약했다 또 새차를 구입하니 결국 그 부담과 처리는 고스란히 어머니의 몫이라고 했다. 

 

멀쩡한 집을 통째로 리모델링 한다고 뜯어내는가 하면 마당의 꽃은 며칠마다 갈아 엎는다고 했다. 그 때마다 온 가족은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린다고 하였다. 

 

또 밤이면 나이트 클럽으로 향해 술과 춤에 빠져 광란의 시간을 보내는데, 술집에서 만난 모든 남성의 술값을 자신의 카드로 결제하는 딸의 낭비벽 때문에 경제적으로도 큰 부담이라고 했다. 

 

매사에 제어할 수 없는 딸의 기분 내키는 대로 하는 거침없는 행동을 보고 있자니 꼭 귀신에 씌인 아이와 다름 없다고 했다. 

 

새벽 5시 정도에 집에 들어오지만 어머니는 잠을 이루지 못하고, 딸을 기다리다 혹 잠이 들어도 가위에 눌려 소스라쳐 깬다고 했다. 뿐만 아니라 딸도 심한 가위눌림에 도저히 맨 정신으로는 잠을 청할 수 없어 술기운에 취해 자는데, 불면증에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는 일이 다반사라 했다.

 

딸의 말에 의하면 잠을 자려고 누운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어떤 모르는 청년과 젊은 여인이 갓난 아이를 안고 자신을 내려다 보다 온 몸을 두들기듯 때린다고 했다. 그런 날이면 몸에 기운이 없어 일어나지도 못하고, 극심한 두통과 구토, 복통에 며칠을 몸져 누웠다고 했다. 

 

또 해가 떠 있는 낮에는 외출을 극히 꺼리다가, 어둠이 짙어지면 자기도 모르게 유흥가에 가 있고, 돈도 물 쓰듯 써야 기분이 좋아지고, 그걸 못하게 되면 불안해져서 안절 부절이라고 했다.

 

최근에는 자신의 방 안에서도 귀신들의 형체를 생생하게 보고 느낄 수 있었다며, 그럴 때는 심장이 뛰고,  손발이 차가워지고, 온 몸에 기운이 빠지고, 눈이 풀리면서 가슴이  답답해지다 실신을 하니 불안감에 밤이 무섭고, 술을 끼고 사는 알콜 중독인 것을 알지만, 사람들과 어울려 신나게 춤추는 동안은 조금이라도 불안과 고통에서 해방되는 것 같아 그 분위기에 휩쓸린다고 했다. 

 

또 술을 마시는 동안 느껴지는 독특한 감정이 있는데 남자들과 연관된 여러 영혼들이 자신에게 접근해 무언가 속삭이듯 에워싸고 한참을 자신의 몸 안에 머물다 나간다고 했다. 

 

그 순간은 가슴이 조여오고, 머리가 터질 것 같은데 집에 있는 동안 느끼는 고통과 중압감에 비하면 견딜만한 수준이라 매일 반복한다고 했다. 하여 유명 무속인에게 굿도 여러 차례 해봤지만 큰 변화가 없었다고 했다.

 

어머니의 말이 딸은 항상 남들이 입지 않는 요란한 의상에, 헤어 스타일과 메이크업도 이상하고, 수시로 다중 인격처럼 성격이 변하고, 정신이 들어왔다 나갔다 종잡을 수 없다고 했다. 

 

방이 너무 지저분해서 막상 가정부가 청소를 하려 하면, 소리소리 지르며 질색을 하니 방안 전체는 도저히 사람이 기거하는 장소가 아니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마치 쓰레기장과 다를 바 없는 방에 바퀴벌레와 개미가 득실 거리는데 겨우 발 디딜 공간에 쭈그리고 앉아 뜬눈으로 밤을 새우는 날도 부지기수 란다. 하여 어쩌다 청소와 정리에 성공한 날이면 딸은 극도로 예민해지고 난폭해져 더 폭음을 한다는 것이다.

 

명성있는 집안이라 누구에게 하소연 할 수도 없어 남몰래 최고의 의료진이 있는 대학병원에서 치료를 받아도 증상은 호전되질 않는다며 울먹이는 어머니는 자신이 살아서는 어찌어찌 돌보기야 하겠으나, 사후에는 이런 딸을 누가 볼 것이며 어린 손자들은 또 누가 키울 것인가 생각하니 기가 막힌다고 했다. 자신은 교회에 나가는 모태 신앙을 가진 크리스챤이라 솔직히 오랜 시간 고민하다 스님을 찾아왔으니 가엾은 딸을 제발 구제해 달라고 애원했다.

 

나는 그 어머니에게 친정에 혹시 애틋한 사랑을 하다 끝내 이루지 못하고, 술로 인해 폐인으로 살다 결국 젊은 나이에 자살한 남자가 있느냐고 물었다. 

 

어머니는 잠시 고개를 떨구더니 긴 한숨을 내쉬며 말을 꺼냈다.

 

“스님, 저도 혹시 그 영혼 때문에 제 딸이 이리 되지 않았을까 평생을 노심초사 했어요. 스님 말씀대로 제 큰 오빠가 50 여년 전 일본 유학시절, 일본 대학생과 사랑에 빠져 아이까지 임신했으나, 당시 부모님의 불호령과 반대로 한국으로 끌려와 힘겹고 외로이 세월을 보내다 결국 그의 나이 28세 젊은 나이에 자기방에서 목을 매고 자살했어요.”

 

“그런데 독실한 기독교 집안에 엄한 아버지의 반대로 49재나 천도재 등은 해준 적이 없었어요. 그리고 일본의 여대생은 홀로 아이를 낳았으나 사랑하는 오빠를 잊지 못해 상사병과 화병으로 끙끙 앓다 병사했고, 아이마저 엄마를 잃고 폐렴이 심해져 사망했지요.”

 

“그후 제 꿈에 죽은 큰 오빠가 자주 나타났어요. 최근에는 오빠가 더 자주 나오는데 그런 이후에는 딸아이의 난폭한 증상들이 더 심해지고 발작을 해요.”

 

그렇게 한참을 이야기하던 어머니의 눈을 보니 눈 안에 귀기가 서린 한많은 영혼이 들어앉아 있었다. 그리고 딸의 눈에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요절한 큰 오빠, 여자친구 그리고 아이를 위해 한맺힌 영혼을 달래주는 영산재를 성대하게 봉행하였고, 딸의 몸에 들어온 책주귀신 영가를 천도 하여 편안한 곳에 이르게 하였다.

 

그 후 몇 달이 지난 후 나를 찾은 딸은 몰라보게 어여쁜 모습이었다. 우선 술을 끊고, 불면증과 우울감도 사라지고, 밤마다 하던 외출도 더 이상은 하지 않으니, 아이들과 영화와 공연도 보고, 놀이공원도 함께 가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고 했다. 어머니 역시 딸이 이전과는 딴 사람이 되어 순종적이고, 단정한 의상에 평범한 머리, 예의바른 보통의 30대 여성이 되었다며 환하게 웃었다. 

 

요즘도 가끔 전화해 절밥이 그립다고 찾아오는 모녀를 볼 때면 흐뭇하다. 

 

도란도란 사찰 구석구석을 뛰어 다니는 아이들의 재잘거림도 정겹다. 무엇보다 나는 이렇게 고통 속에 허우적대며 생사의 기로에 놓인 빙의 환자들이 정상으로 돌아와 새로운 삶을 찾을 때 내가 출가하여 스님이 된 것에 참으로 감사하고, 보람을 느낀다.

 

나는 기도 의식 때마다 인연 영가에게 이렇게 이야기한다. 

 

“원한이 있으면 왕생극락(往生極樂) 못하나니 원 풀고 한 풀어 극락세계(極樂世界) 좋은 길로 영결종천(永訣終天) 들어가서, 인도환생(人道還生) 하옵소서.” 

 

이런 축원은 나의 간절한 바람이기도 하다. 산 자나 죽은 자나 원한의 고리가 없어야 비로소 바른 길을 갈 수 있다. 

 

법구경에 이르기를 “잠 못 드는 이에게 밤은 길고, 지친 나그네에게 길은 멀다. 바른 진리 깨닫지 못하는 이에게 윤회의 길은 참으로 어둡고 멀다”라고 했다

 

의학의 발달로 평균 수명도 길어지고 100세 인생이라 하지만, 잠 자는 시간, 아픈 시간, 번뇌하고 고통 받는 시간을 다 제하면 기껏해야 내게 남은 생의 날이 과연 얼마일까 생각해 보라. 

 

출가자인 나에게도 선망의 대상인 뮤지션이 있으니 유명한 뮤지컬 배우 임태경이다. 지난해 우연히 TV채널을 돌리다 보니 “어디로 가야하나 구름 같은 내인생 바람이 부는대로 흘러가네”라는 가사가 심금을 울리는 ‘구름같은 인생이라는 노래를 임태경 배우가 열창하고 있었다. 

 

순간 우리네 덧없는 인생살이 생사(生死)의 윤회(輪回)를 거듭하는데 최고의 아름다운 깨달음의 경지에는 오르지 못한다 하여도 미망(迷妄)을 허우적대지는 말아야 하지 않을까 싶었다. 중생의 본질은 변하지 않더라도 그 마음만은 얼마든지 변화할 수 있지 않겠는가. 

 

오늘 산사의 이름 모를 꽃과 풀이 삶과 죽음의 법칙 모르더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거나 절망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찬란하고 아름답게 그 생을 본인의 몫을 다하는 것처럼 사바세계에 태어난 이상 최소한 원한(怨恨)만큼은 만들지 않고 살아가야 할 것이다.

 

 묘심 종정.
■북한산 한국불교 법성종 자비정사 종정 묘심. 필명 : 묘심화. 본 글은 필자 개인 의견으로, 본지 편집 방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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