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냐, 복귀 포석이냐'…태광 EB 사태의 본질은?

이동훈 기자 / 2025-07-11 12:05:07
태광, 정당한 경영 판단 주장에도 "전형적 지배구조 왜곡" 비판에 보류
"불신이 성장 발목 잡아"…기업 자율성과 시장 감시 간 균형 과제 부각

[하비엔뉴스 = 이동훈 기자] 자사주 전량을 담보로 교환사채(EB) 발행을 시도한 태광산업이 시장의 반발로 계획을 보류했다. 표면적으론 신사업 투자를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비공개 사모 방식과 이례적 구조는 사실상 우호주주 확보 및 이호진 전 회장의 복귀와 연관된  것  아니냐는 의심을 샀다. 반면 단순한 자금조달을 넘어, 이번 사태는 경영판단권과 지배구조 사이의 딜레마를 드러냈다는 분석도 나온다.


11일 태광그룹과 재계에 따르면 태광산업은 지난 6월 27일 이사회에서 자사주 24.4% 전량을 활용한 3200억원어치 EB 발행 안건을 의결하며, 동시에 정관 변경을 통해 사업 목적에 디지털·바이오 등 다수의 신사업 분야를 추가하는 안건도 추진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주주추천 사외이사가 이사회에서 공개 반대 의견을 표명했고, 경제개혁연대 등 시민단체 역시 ‘우호지분 확보용 자사주 처분’이라며 강하게 비판에 나섰다.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 [사진=연합뉴스]

 

자사주는 원칙적으로 의결권이 없어 지배력에 영향을 미치지 않지만, EB를 통해 외부로 넘기면 최종 교환 시점에서 의결권이 회복된 주식으로 전환된다. 반대파들은 이를 ‘사실상의 우호 지분 확보’로 해석했고, 이는 곧 이호진 전 회장의 복귀 구상과 연결지었다.

경제개혁연대는 “전형적인 지배구조 왜곡”이라며 강하게 반발했고, 실제로 이사회 내에서도 주주추천 사외이사가 공식 반대 입장을 밝혔다. 자본시장 내에서는 “사실상 특정 세력에 지배력 우호 지분을 이전하는 것과 다름없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금융감독원도 전날 태광산업의 교환사채 발행과 관련해 자사주 처분 상대방을 공시하지 않은 점 등을 이유로 정정 명령을 내렸다.

일각에서는 사외이사의 권한 강화가 오히려 기업의 전략적 의사결정에 제약을 줄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한다. 자사주를 활용한 교환사채 발행은 신사업 투자와 재무 유연성 확보를 위한 ‘정당한 경영 판단’이며, 상법상으로도 허용된 방식이라는 주장이다. 특히 투자 전략의 성격상 세부 내용을 외부에 모두 공개하기 어려운 만큼, 사모 방식 역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는 입장이다.

이번 사태는 단순한 자금 조달 실패를 넘어, 기업 경영의 자율성과 시장의 감시 기능 사이에 놓인 균형 문제를 드러낸다. 과거 족벌 중심의 사익 추구 사례들이 반복되면서, 자본시장은 이제 ‘합리적 의심’을 기본 전제로 기업을 바라보고 있다. 경영자의 선의만으로는 시장의 신뢰를 얻기 어려운 복잡한 시대가 된 것이다.

그러나 모든 전략이 사익으로 귀결된다는 전제하에 기업을 통제하게 되면, 그만큼 기업의 성장동력은 꺾인다. 기업 입장에서는 이 같은 ‘불신’이 사업 확장과 투자 실행을 원천 봉쇄하는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불만도 적지 않다. 최근 상법 개정으로 독립적 사외이사의 권한이 강화되면서, 전략적 의사결정이 내부에서 유출되거나, 투자 구상이 조기에 노출될 우려도 커졌다.

재계 인사는 “경영자의 전략 실행권이 상시적인 ‘불신’에 노출되면, 어느 기업도 과감한 투자를 할 수 없게 된다”며 “특히 최근 상법 개정으로 사외이사 권한이 강화되면서 민감한 정보가 내부에서 새나갈 우려까지 생기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태광그룹은 하비엔뉴스에 이번 EB발행에 대헌 입장을 전했다.

그룹 관계자는 “보유 자사주 기초 교환사채 발행과 관련해 트러스톤 측의 가처분 신청에 대한 법원의 결정이 나올 때까지 향후 후속 절차를 중단하기로 했다”며 “소액주주 및 노동조합 등 이해 관계자들과 긴밀히 소통하고, 이들의 의견과 입장을 존중할 방침이다”고 강조했다.

그룹은 이어 “태광산업은 이해 관계자들과 소통하는 계기를 통해 석유화학 업종의 업황과 태광산업의 사업 현황과 계획, 자금조달 필요성 등을 상세하게 설명하고, 이해 관계자들의 우려와 의견도 충분히 듣겠다”며 “트러스톤 측의 가처분 신청에 대한 법원의 결정을 존중하고, 이해 관계자들의 의견을 충분히 듣고 향후 의사 결정에 이를 반영할 방침이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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