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칼 "경영권 방어 아닌 복지제도 운영 목적"
[하비엔뉴스 = 이동훈 기자] 한진그룹의 지주회사 한진칼이 최근 단 25명의 직원만을 위해 663억 원 규모의 자사주를 사내복지기금에 출연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논란을 증폭시키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직원 복지 향상’을 내세웠지만, 그 이면에는 조원태 회장의 지배력 강화를 노린 ‘꼼수 경영’이라는 비판이 거세다.
12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한진칼은 지난달 15일 자사주(663억원·44만 44주·지분율 0.66%)를 오는 8월까지 사내근로복지기금에 출연한다고 밝혔다. 한진칼은 자사주 출연의 이유로 구성원의 생활 안정과 복지 향상을 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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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사진=연합뉴스] |
하지만 업계와 시민단체 일부에서는 총수 이익을 위한 자사주 활용이라는 오래된 기업 통치의 민낯을 다시 한 번 드러낸 사례 아니냐는 성토가 나오고 있다.
한진칼이 복지기금 명목으로 출연한 자사주는 총 44만 주, 시장가 기준 약 663억 원. 그러나 이를 수혜받을 직원은 단 25명에 불과하다. 단순 계산으로 1인당 약 26.5억 원 상당의 주식이 복지로 제공되는 셈이다. 항공업계에서 직원에게 이처럼 과도한 혜택이 돌아가는 상황은, 상식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제의 본질은 따로 있다. 자사주는 일반적으로 회사가 자기 주식을 매입한 것으로 간주돼 의결권이 제한된다. 하지만 이를 사내근로복지기금에 출연할 경우, 기금은 회사와 별개의 독립된 법인격을 가진 제3자로 인정받게 된다. ‘근로복지기본법’에 따라 사내근로복지기금은 기금 이사회의 독자적 판단에 따라 주주로서 권리를 행사할 수 있고, 의결권도 되살아난다.
이로 인해 조 회장 측의 지분율은 20.09%에서 20.75%로 소폭 상승했으며, 의결권 행사에 우호적인 구조가 완성됐다. 형식만 달라졌을 뿐, 실질적으로는 자사주를 ‘우군 주주’로 둔갑시키는 편법이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정책의 허점을 파고든 ‘선제 행동’이라는 시각도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대선 공약을 통해 자사주 소각의무화를 담은 상법 개정을 추진 중이다. 이는 자사주가 지배주주의 경영권 방어에 악용되는 구조를 근절하겠다는 취지다.
한진칼은 법적 판단이 확정되기 이전 시점에 자사주를 출연했다는 점에서, 제도 개혁을 피하려는 의도가 있었던 것으로 해석될 여지도 있다.
정치권에서는 오히려 이 사건이 상법 개정의 당위성을 더욱 부각시키는 계기가 되고 있다는 평가다. 미국이나 독일 등 선진국에서는 자사주 취득 시 소각하거나 미발행 주식으로 처리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한국은 이를 제3자에게 넘겨 경영권에 활용할 수 있는 여지를 허용하고 있다.
반면 한진칼이 “사내복지기금 출연은 지배력 강화를 위한 조치가 아닌, 업계 표준에 부합하는 복지제도 운영 차원”이라는 입장을 타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한진칼은 “사내근로복지기금 설립은 아시아나항공과의 통합 등으로 지주사 인력이 확대될 가능성을 고려한 선제적 준비”라며 “구성원 복지 강화를 위한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 목적”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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