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에서 동반자로?...카카오 노조, 네이버 노조와 연대
[하비엔뉴스 = 홍세기 기자] 최근 국내 주요 IT 기업들의 노동조합이 일제히 파업과 집회에 나서면서 기존의 온건했던 IT 업계 노동운동이 강경 투쟁으로 전환되고 있다.
카카오, 네이버, 네오플, 한글과컴퓨터 등 주요 IT 기업 노조들이 임금협상 결렬과 경영진의 일방적 결정에 반발하며 창립 이후 첫 파업을 예고하거나 시행하고 있어, IT 산업 전반의 노사관계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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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오플 노조 옥외 집회 [사진=네오플분회] |
◆네오플 노조, 조기출근 거부 등 준법투쟁...성과배분 갈등
넥슨 자회사 네오플의 노동조합이 지난 10일 18시를 기점으로 야근 거부와 집회를 시작했다. 민주노총 화학섬유식품노조 넥슨지회 네오플분회는 제주 본사에서 조합원 전원이 참여하는 준법투쟁에 돌입했으며, 이는 네오플 창사 이래 노동자들이 특정 업무를 집단적으로 거부한 첫 사례로 기록되었다.
조합원들은 10일과 11일 오후 6시 전원 퇴근 후 집회에 참여하며, 12일부터는 조기출근 거부(오전 9시 이후 출근), 오후 7시 이전 퇴근, 주말근로 거부 등의 준법투쟁을 지속할 예정이다.
서울지사 조합원들도 18일부터 같은 방식의 투쟁에 합류할 계획이어서, 네오플의 주력 게임인 던전앤파이터의 여름 업데이트에 차질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조정우 네오플 노조 분회장은 "준법투쟁을 시작으로 노동조합의 PS 4% 지급 요구를 지속할 예정이며, 회사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을 때는 파업궐기대회를 진행하고 본격적인 전면파업을 진행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네오플 노조의 투쟁 배경에는 성과급 제도 운용을 둘러싼 심각한 갈등이 자리하고 있다. 네오플은 2024년 던전앤파이터 모바일의 중국 성과에 힘입어 역대 최고 매출액인 1조3783억원과 영업이익 9824억원을 달성했다.
그러나 회사는 신규개발 성과급(GI)을 기존 지급액의 3분의 2만 지급했고, 라이브 서비스 담당 직원들의 KPI 인센티브(KI) 보상은 절반 가까이 삭감했다고 노조 측은 주장하고 있다.
노조는 전년도 영업이익 9824억원의 4%에 해당하는 약 393억원을 직원들에게 수익배분금(PS)으로 분배할 것을 요구하고 있으며, "회사의 매출이 줄면 덜 받고, 매출이 늘면 그만큼 더 받는 기여에 따라 보상받는 구조를 요구하고 있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네오플 노조는 지난 5월 28일 투표에서 참석 조합원 93.48%(917명)의 찬성으로 쟁의권을 확보했으나, 29일 제주지방노동위원회 3차 조정에서도 노사간 합의는 이뤄지지 않았다.
◆ 카카오 노조의 역사적 첫 파업
카카오 노동조합이 2018년 창립 이후 처음으로 파업에 돌입한다고 지난 10일 발표했다. 민주노총 산하 전국화학섬유식품산업노조 카카오지회(크루유니언)는 카카오모빌리티 임금·단체협상 결렬에 따라 11일부터 단계적 파업을 실시한다고 밝혔다.
노조는 11일 2시간 부분파업을 시작으로 18일에는 4시간 부분파업과 대규모 집회를 개최하고, 25일에는 하루 전면파업을 진행할 예정이다.
서승욱 크루유니언 지회장은 "카카오모빌리티의 성장은 크루들의 헌신과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으나, 사측은 높은 실적에도 불구하고 일방적이고 낮은 수준의 보상안을 제시하며 노동자의 정당한 권리와 성과를 외면했다"고 비판했다.
카카오모빌리티는 2024년 당기순이익이 268억원으로 2023년 당기순손실 838억원 대비 1100억원 가량 개선되었지만, 직원들에 대한 보상은 이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것이 노조의 주장이다.
카카오 노사는 최근 포털 서비스 '다음' 분사 등을 둘러싸고 대립하고 있다. 노조는 카카오가 다음 사업부문을 별도 법인으로 분리하는 데 반발하고 있으며, 지난 4월 카카오모빌리티의 사모펀드 매각설이 불거지자 매각 반대에 나서기도 했다.
카카오는 지난 3월 주주총회를 기점으로 노사 합의가 완만히 이뤄지지 못하고 있으며, 카카오모빌리티, 카카오VX 등 계열사 임금 및 단체협상에서 협의를 이끌어내지 못한 상황이다.
카카오 노조는 올해 초부터 카카오모빌리티를 비롯한 카카오법인 9곳과 교섭을 진행했지만 합의점을 찾지 못해 3월 26일 교섭을 결렬했으며, 일부 법인은 임금교섭 또는 단체교섭만 결렬했지만 카카오모빌리티와 카카오엔터테인먼트·카카오페이는 임단협 모두 결렬된 상태다.
◆ 네이버 노조의 인사 복귀 반대 투쟁
네이버 노동조합 '공동성명'은 최인혁 전 최고운영책임자(COO)의 테크비즈니스 부문 대표 복귀에 강력 반발하며 집회를 이어가고 있다.
네이버 노조는 지난 5월 22일부터 26일까지 조합원 5701명을 대상으로 최 대표 복귀 반대 투표를 진행한 결과, 총 4507명이 참여한 가운데 98.82%에 해당하는 4454명이 복귀에 반대했다고 발표했다. 이는 공동성명 설립 이래 임금, 단체교섭 외 사안에 대해 처음 진행된 전 조합원 투표로, 조직 구성원들의 강력한 반대 의사를 보여주는 결과다.
이번 노사 갈등은 2021년 5월 네이버의 한 직원이 직장 내 괴롭힘을 못 이겨 극단적인 선택을 한 사건에 따른 것이다. 당시 사내리스크관리위원회는 최 COO에게 경고를 했고, 이후 최 전 COO가 도의적 책임을 지며 사임했는데, 지난 5월 15일 네이버 테크비즈니스 부문 대표로 복귀하면서 노조원들이 반발에 나선 것이다. 네이버 노조는 6월 11일 '네이버 리부트 2.0: 불통, 침묵, 퇴행을 거부한다'는 제목의 2차 집회를 예고했다.
오세윤 네이버 노조 지회장은 "2021년 사건 이후 조직문화 개선을 약속했던 경영진이 구성원들의 압도적 반대에도 불구하고 해당 인사를 강행한 것은 그간의 신뢰 회복 노력을 무색하게 만든다"고 발언했다.
공동성명은 "조직 구성원의 목소리가 철저히 외면되고 있는 지금,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다며 이번 사안은 특정 인사의 복귀 여부를 넘어, 건강한 조직문화와 경영책임의 근본을 묻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 IT 업계 노조 간 연대 투쟁
카카오 노조의 첫 파업은 네이버 노동조합과의 연대로 시작된다. 카카오 노조는 11일 2시간 파업 진행과 함께 네이버 노조의 최 대표 복귀 반대 집회에 참여해 연대 발언을 진행할 예정이다. 이번 연대는 단일 이슈를 넘어서 카카오는 성과와 보상의 불균형에, 네이버는 인사 복귀를 둘러싼 조직 신뢰 위기에 각각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는 점에서, IT업계 내부 구조에 대한 공동 문제의식을 보여주고 있다.
두 노조의 연대는 IT산업 전반의 구조적 문제 해결과 노동환경 개선을 위한 사회적 요구를 함께 드러내고 있다. 카카오 노조는 "카카오와 네이버 양 지회는 IT업계 전반의 건강한 노동환경 조성과 책임경영 실현을 요구하며 공동 목소리를 내왔다"며 "두 지회 연대는 IT산업 전반의 구조적 문제 해결과 노동환경 개선을 위한 사회적 요구를 함께 드러낸다"고 강조했다.
특히, 이번 파업에는 전국화학섬유식품산업노동조합(화섬식품노조)의 산별 연대가 더해지면서, 카카오 공동체 노동조합의 투쟁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화섬식품노조는 IT·플랫폼 산업 내 다양한 조직들과의 유대와 연대를 강화해왔으며, 이번 파업 역시 산별노조의 조직적 지원과 연대의 힘이 뒷받침되고 있다. 네이버, 카카오, 넥슨, 스마일게이트, 엔씨소프트, 웹젠, 한글과컴퓨터지회 등 7곳으로 구성된 '화섬식품노조 IT위원회'는 총 32개 계열사와의 임금 협약 체결을 위한 연대 교섭을 진행해오고 있다.
◆ 온건한 성향에서 강경 투쟁으로의 전환
그동안 IT 업계 노조는 제조업 등 다른 산업군에 비해 온건하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2019년 4월 네이버 노조가 단행한 '판교 최초이자 마지막 파업'은 업무 시간인 오후 3시쯤 조합원들이 인근 영화관에 가서 '어벤져스: 엔드게임'을 관람하는 것이었다. 이후에도 임단협 결과에 따라 단체행동에 나선 경우가 없지 않았지만, 최근처럼 여러 노조가 잇따라 파업을 예고한 것은 생소한 일이다.
이번 6월에만 카카오모빌리티, 네오플, 한글과컴퓨터 등 세 회사가 파업을 예고하거나 시행하고 있으며, 실제 파업에 돌입할 경우 세 회사 모두 창립 이래 첫 사례로 남게 된다. 과거에는 온건한 성향으로 평가받던 IT 노조들이 최근 들어 파업 예고와 집단행동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것은 주목할 변화라는 평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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