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홈플러스, 메리츠·MBK·정부 결단 내려야

이동훈 기자 / 2026-06-02 10:31:12
외환위기 때 미도파가 남긴 연쇄부실의 경고
생활경제·소비심리 흔드는 뇌관이 될 수도

[HBN뉴스 = 이동훈 기자] 홈플러스 사태는 단순한 유통기업 회생 문제가 아니다. 전국 점포망과 납품업체, 임직원, 지역 상권, 소비자가 얽힌 생활경제의 문제다. 소비자들은 익숙한 매장이 문을 닫는 장면을 통해 경제 전반의 불안을 체감한다. 자칫 생활경제와 소비심리를 동시에 흔드는 뇌관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가볍게 볼 사안이 아니다.


1997년 외환위기(IMF) 전후의 기억이 그렇다. 당시 미도파백화점의 부도는 외환위기 이후 소비 현장의 위축과 기업 연쇄부실을 보여준 상징적 사례로 남았다.  
 

 홈플러스 강서점 본사 [사진=연합뉴스]

물론 IMF사태는 어느 날 갑자기 터진 단일 사건이 아니었다. 한보 등 대기업 부실이 이어지면서 금융권 불안이 커졌고, 기업과 가계의 심리는 급속히 얼어붙었다. 또한 지금의 홈플러스 사태를 당시와 같은 수준으로 단정할 수는 없다. 경제 규모도 다르고, 금융 시스템도 당시와는 다르다.

하지만 한 가지 교훈만큼은 분명하다. 큰 기업은 홀로 쓰러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특히 유통기업은 제조업보다 더 넓은 생활경제망에 연결돼 있다. 점포 하나가 멈추면 그 뒤에는 임원, 직원, 납품업체, 물류업체, 입점업체, 임대인, 아르바이트 노동자, 지역 상인들이 함께 흔들린다.

대형마트 폐점의 지역 파급력은 선행 연구에서도 확인된다. 한국유통학회 ‘유통연구’에 게재된 ‘대형마트 폐점이 주변 상권 및 고용에 미치는 영향’ 연구에 따르면, 대형마트 1개 점포가 문을 닫을 경우 반경 0~1km 상권 매출은 4.82%, 1~2km 상권 매출은 2.68% 감소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이를 금액으로 환산하면 반경 0~3km 주변 상권에서 점포당 평균 약 285억원의 매출이 줄어드는 규모다. 고용 충격도 작지 않다.

같은 연구는 대형마트 1곳 폐점 시 마트 자체와 입점업체, 용역업체, 납품업체, 주변 상권을 포함해 약 1374개의 직간접 일자리가 사라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현장의 이상 신호는 이미 나타나고 있다. 홈플러스는 전국 123개 대형마트 가운데 일부 점포들의 순차적 폐점을 공식 확정했다. 사실상 줄폐점이 시작된다. 자금줄이 마르면서 일부 점포에서 상품 납품 차질이 빚어지고 있으며, 이러한 매대 공백 현상이 심화할 경우 이는 곧 고객 이탈과 매출 감소라는 악순환의 굴레로 이어질 수 있다.

쟁점은 홈플러스의 회생을 위한 마지막 자금 공백을 누가 메울 것인가이다. 최대 채권자인 메리츠금융그룹은 추가 자금 지원에 신중할 수밖에 없다. 채권자로서 회수 가능성을 따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회생 가능성이 불투명한 기업에 추가 자금을 넣는 결정은 금융회사 입장에서도 부담이다.

하지만 홈플러스 사태는 단순한 채권 회수 게임으로만 볼 수 없다. 청산 가능성이 커질 경우 피해는 채권자와 주주에게만 돌아가지 않는다. 협력업체 미수금, 임직원 고용, 지역 점포 공백, 소비심리 위축으로 파장이 번질 수 있다. 메리츠의 입장도 이해 못 할 바는 아니다. 문제는 시간이 없다는 점이다. 유통기업의 기업가치는 매대가 비고, 납품이 줄고, 고객이 빠져나가면 순식간에 훼손된다. 채권 회수를 극대화하려면 오히려 지금의 운영 공백을 막는 것이 더 합리적일 수 있다.

메리츠가 최대 채권자로서 권리를 행사하는 것과 별개로, 지금은 회생 가능성을 살릴 수 있는 대승적 판단이 필요한 시점이다.

MBK파트너스 역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홈플러스의 대주주로서 회생 과정에서 어떤 책임 있는 역할을 할 것인지를 분명히 해야 한다. MBK는 홈플러스 인수 이후 매각 후 재임대, 이른바 세일앤리스백 방식으로 점포 자산을 유동화해 왔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일부에서는 이런 이유로 홈플러스의 고정비 부담이 커지고, 설비투자 여력이 줄어들었으며, 본원적 경쟁력이 약화됐다고 주장한다. 사모펀드의 투자 논리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사회경제적 책임이 여기에 있다. 회생 절차가 자금 공백에 막혀 좌초될 경우, 그 부담은 결국 협력업체와 노동자, 소비자에게 전가될 수 있다.

정부도 뒷짐만 지고 있을 일이 아니다. 민간기업 회생에 정부가 무조건 돈을 넣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정부와 금융당국 그리고 법원은 최소한 사태가 생활경제 전반으로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한 실질적 중재에 나서야 한다는 의미이다.

시장 원칙은 중요하지만, 그 원칙이 책임 회피의 명분이 돼서는 안 된다. 홈플러스가 무너지면 손실은 주주와 채권자 장부에만 남지 않는다. 소비자는 지갑을 닫고, 협력업체는 멈추고, 금융권은 더 보수적으로 움직인다. 위기는 그렇게 전염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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