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사관학교 통합...러시아 혁명이 남긴 군 지휘체계·전문성 악화의 교훈

이동훈 기자 / 2026-09-01 13:44:48
미래전 복잡해질수록 군별 전문성 중요
합동성은 전문성을 없애는 것이 아닌 연결

[HBN뉴스 = 이동훈 기자] 이재명 정부가 추진하는 육·해·공군 사관학교 통합 문제로 나라가 시끄럽다. 정부는 합동성 강화와 미래전 대비, 병력 감소 대응과 우수 인재 확보 등을 명분으로 세 사관학교를 하나의 국군사관학교로 통합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이에 대한 반대의 목소리가 들끓는다. 시민사회단체와 예비역 안보단체 133곳이 연대해 통합 계획의 전면 백지화를 촉구하고 있다.


논쟁의 본질은 학교 세 곳을 하나로 합칠 것이냐 말 것이냐에 있지 않다. 군대를 강하게 만드는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부터 던져야 한다. 

 

 육군사관학교·해군사관학교·공군사관학교를 상징하는 표장. [이미지=연합뉴스]

평화는 선의만으로 지켜지지 않는다. 외교와 협상 뒤에는 상대가 감히 넘보기 어려운 국력과 군사적 억지력이 있어야 한다. 문제는 군사력을 전투기 몇 대, 미사일 몇 발의 숫자로만 계산할 수 없다는 점이다.

 

똑같은 소총을 든 정예병과 갓 총을 지급받은 병사는 숫자로는 같은 한 명이다. 전투력까지 같지는 않다. 훈련과 경험, 전술에 대한 이해가 다르기 때문이다. 장교는 더하다. 수백·수천명의 병력을 움직이는 판단력과 지휘능력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군의 전문성이 중요한 이유다.

최근 미국은 우주 분야 전문인력을 위한 별도의 양성기관 설립에 나섰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28일 ‘미국 우주사관학교’ 설립 절차를 시작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군 사관학교와 같은 형태는 아니지만 우주군과 연방정부, 민간 우주 분야를 아우르는 전문인력 양성 경로를 새로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미국과 한국의 군제는 다르다. 그렇더라도 미래전이 더 복잡하고 전문화되는 시대에 우리는 왜 전문 교육기관을 합치는 것부터 답으로 정했는지는 물어볼 필요가 있다.

시대와 제도의 규모는 다르지만, 군의 지휘체계와 전문 인력의 기반이 약화될 때 전투력 역시 떨어졌다는 사실은 역사에서 반복된다.

1917년 2월혁명 이후 러시아 군의 기존 지휘체계와 규율은 급격하게 흔들렸다. 장교의 권위는 무너지고 병사위원회의 영향력은 커졌다. 전쟁 피로와 경제난, 정치 혼란까지 겹치면서 군대는 빠르게 전투력을 잃었다. 무너진 것은 군대만이 아니었다. 군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한 임시정부의 기반도 함께 흔들렸고, 그해 10월 볼셰비키가 정권을 장악하면서 러시아는 세계 최초의 사회주의 국가가 되어 버렸다. 


비잔티움 제국은 오랜 기간 각 지역의 방위를 담당하며 전투 경험을 축적한 군사체계로 제국을 지탱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이런 기반이 약해지고 외국 용병 의존은 커졌다. 병력은 돈으로 채울 수 있어도 축적된 경험과 조직의 기억까지 살 수는 없었다. 제국은 이후 핵심 군사·인력 기반이던 아나톨리아의 상당 부분을 잃으며 큰 타격을 입었다.

스파르타는 더 극적이다. 한때 그리스 세계가 두려워했던 힘의 근원은 어린 시절부터 혹독한 훈련을 받은 정예 전사계층 ‘스파르티아테스’였다. 완전시민 전사의 수가 급격히 줄면서 정예전력 유지도 어려워졌다. 줄어든 전사층은 쉽게 복원되지 않았다. 스파르타는 기원전 371년 레욱트라 전투에서 패권을 잃은 뒤 예전의 강국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현대전은 육·해·공군을 넘어 우주와 사이버, 드론과 인공지능까지 하나의 전장으로 연결되고 있다. 그렇기에 사관학교 통합이 내세우는 합동성 강화의 취지는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합동성과 전문성은 반대말이 아니다.

합동성은 전문성을 없애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전문성을 연결함으로써 완성된다. 육군은 땅에서, 해군은 바다에서, 공군은 하늘에서 싸우는 법을 가장 깊이 알아야 한다. 각자의 영역을 제대로 아는 전문가들이 하나의 작전 아래 움직이는 것이 합동이다.

공동교육과 합동훈련을 늘리고 AI·드론·우주·사이버전 교육을 확대하면 된다. 전문성을 유지하면서 합동성을 높이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군대라는 시스템은 거대한 우주선과 닮았다. 우주선을 만드는 데는 수십 년의 기술과 시행착오가 필요하다. 망가뜨리는 데는 결정적인 나사 하나를 잘못 건드리는 것으로도 충분할 수 있다.

 

이런 가운데 통합 사관학교 추진을 둘러싼 변수가 생겼다는 것이다. 현 정부에서 총대를 매고 통합을 추진해온 안규백 국방부 장관이 탈영 의혹 등 잡음 가운데 물러나고 후임 후보자로 육사 46기 출신인 강신철 전 한미연합사 부사령관이 지명됐다. 강 후보자는 합참 작전본부장과 한미연합사 부사령관 등을 거친 4성 장군 출신이다. 국방 수장이 바뀌는 만큼 통합 사관학교 추진이 당초 정부 구상대로 강행 여부는 불투명해진 것 아니냐는 관측이 고개를 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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