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를 넘어선 공동체적 치유… 평화를 향한 집단적 성찰의 시간
☞1편에 이어서...
[HBN뉴스 = 이정우 기자] 천년의 침탈과 분단의 상처를 안은 한반도, 그리고 전쟁으로 유명을 달리한 세계인의 아픔까지. 묘심 종정은 천일기도와 위령탑 발원을 통해 국경과 이념을 넘어선 집단적 참회와 치유의 길을 제시한다. 과거를 직시하고 기억을 성찰할 때 비로소 평화로 나아갈 수 있다는 메시지는, 인류 전체에 깊은 울림을 던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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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민족 역사는 단순한 연대기의 나열이 아니다. 그것은 기억의 축적이며, 때로는 세대를 넘어 이어지는 상처의 기록이다. 한반도의 역사는 특히 그러하다. 평화로운 삶의 터전이었던 이 땅은 오랜 세월 수많은 외세의 침탈 속에서 흔들려 왔다.
기록에 따르면 한반도는 역사적으로 약 970여 차례에 이르는 외침을 겪은 것으로 전해진다. 고대 북방 세력의 남하에서부터 중원의 왕조, 왜구의 침입, 그리고 근대 제국주의 열강에 이르기까지 침략의 양상은 달랐지만 결과는 하나였다. 삶의 기반은 무너지고, 백성의 일상은 파괴되었으며, 공동체의 질서는 무참히 흔들렸다.
그러나 침탈의 흔적은 단순히 전쟁의 폐허로만 남지 않는다. 그것은 인간의 존엄을 훼손하고, 기억 속 깊은 곳에 지워지지 않는 균열을 남긴다. 세월이 흐르고 세대가 바뀌어도 그 상처는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형태를 바꾸어 이어지며 오늘의 우리에게까지 영향을 미친다. 이 때문에 역사는 과거에 머무는 기록이 아니라, 현재를 규정하는 힘으로 작용한다.
한반도의 반복된 침략사는 흔히 ‘약소국의 비극’으로 설명되곤 한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지정학적 위치, 강대국 사이의 완충지대라는 구조적 현실, 그리고 내부의 분열이라는 복합적 요인이 얽혀 있다. 외세의 침략과 더불어 내부의 갈등 또한 상처를 키워왔던 것이다. 이처럼 겹겹이 쌓인 역사적 상흔은 단순한 정치적 해법만으로는 온전히 치유되기 어렵다.
눈에 보이는 국경은 협상으로 조정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마음속 경계와 기억의 벽은 그렇지 않다. 바로 이 지점에서 종교의 역할이 다시금 주목된다. 인간의 내면과 집단의 기억을 다루는 영역에서, 종교는 때로 정치나 제도가 닿지 못하는 깊은 곳까지 스며든다.
묘심 종정이 발원한 ‘천일기도’와 위령탑 발원은 이러한 맥락 속에서 읽혀야 한다. 이는 단순한 수행이나 의례를 넘어, 오랜 시간 축적된 집단적 고통을 직시하겠다는 선언에 가깝다. 종정 스님은 “천년의 아픔을 외면한 채 미래를 말하는 것은 공허하다”고 말한다. 과거를 직시하는 성찰 없이는 진정한 평화도 존재할 수 없다는 뜻이다.
불교에서 말하는 ‘업(業)’의 개념은 이와 맞닿아 있다. 개인의 행위뿐 아니라 집단의 역사 또한 인과의 흐름 속에서 현재를 형성한다는 관점이다. 한반도의 비극 역시 단절된 사건이 아니라 축적된 흐름의 결과로 이해될 수 있다. 그렇기에 이를 풀어내기 위한 노력 또한 개인을 넘어 공동체적 차원에서 이뤄져야 한다.
이러한 점에서 천일기도와 위령탑 발원은 일종의 ‘집단적 참회’라 할 수 있다. 특정 세대나 개인에게 책임을 묻는 것이 아니라, 역사 전체를 관통하는 고통을 함께 짊어지고 풀어내려는 시도다. 이는 과거를 단죄하기 위함이 아니라, 그 굴레를 넘어 새로운 길을 찾기 위한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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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묘심화의 빙의의 비밀 방송 프로 출연 중인 묘심 종정 [제공/미디어엔라이프엔TV] |
종정 스님은 “기도는 과거를 바꾸지 못하지만, 과거를 바라보는 우리의 마음은 바꿀 수 있다”고 강조한다. 이 말은 단순한 종교적 위로를 넘어선다. 기억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질 때, 미래 또한 달라질 수 있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목할 점은 이 천일기도가 특정 종단이나 신앙의 경계 안에 머무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전쟁과 분단의 상처는 특정 종교의 문제가 아니라 이 땅을 살아가는 모두의 기억이다. 따라서 이를 치유하는 과정 또한 공동체 전체의 몫이 되어야 한다.
묘심 종정은 “기도는 불자만의 몫이 아니라, 평화를 바라는 모든 이들의 마음이 모이는 자리여야 한다”고 말한다. 이는 참여의 문턱을 낮추는 동시에, 세상 모든 살아있는 이들이 평화를 향한 책임을 사회 전체로 확장시키는 메시지다.
실제로 멈출수 없는 천일기도와 위령탑 발원은 다양한 방식으로 참여의 길을 열어두고 있다. 거창한 의식이 아니더라도, 일상의 자리에서 평화를 염원하는 마음, 작은 추모와 묵념, 이웃을 향한 배려와 화해의 실천이 모두 이 기도의 일부가 될 수 있다. 이러한 참여는 종교적 행위를 넘어, 분열된 사회를 다시 잇는 ‘공존의 연습’이 된다.
위령탑 발원 또한 그러한 참여의 결실로 세워질 것이다. 하나의 구조물이지만, 그 안에는 수많은 이들의 기억과 기도, 그리고 염원이 함께 쌓이게 된다. 그것은 특정 개인의 업적이 아니라, 시대가 함께 만들어낸 공동의 상징이 될 가능성을 지닌다.
우리는 종종 역사를 과거의 사건으로만 인식한다. 그러나 진정한 역사는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의 의식 속에서 계속해서 새롭게 해석된다. 기억을 외면하면 상처는 반복되고, 직시하면 비로소 치유의 길이 열린다.
한반도를 비롯한 전세계 전쟁의 역사는 고통으로 얼룩져 왔지만, 동시에 그 고통을 견디며 이어져 온 역사이기도 하다. 이제 남은 질문은 하나, 우리는 그 상처에 머물 것인가, 아니면 그것을 딛고 새로운 길로 마래로 나아갈 것인가.
묘심 종정의 천일기도 서원은 세상이 던진 그 물음에 대한 응답이다. 그리고 그 응답은 염치를 아는 더 많은 이들의 참여 속에서 비로소 완성될 것이다. 수많은 전쟁이 앗아간 이들을 그저 안타까운 죽음이 아니라 귿들은 수천만 수백만 개의 우주였음을, 남겨진 이들의 통절한 침묵으로 살아남은 우리모두가 기억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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