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기업, 조만간 진영 선택 불가피
[HBN뉴스 = 이동훈 기자] 중국 정부가 자국 IT 기업들의 엔비디아 인공지능(AI) 칩 구매를 전면 중단시켰다. 미국의 수출 규제에 맞서 ‘자급 체제’를 선언한 중국이 본격적으로 글로벌 AI 칩 공급망을 양분하는 신호탄을 쏜 셈이다. 이번 조치는 단순한 기업 차원의 이슈를 넘어, 미·중 기술 패권전쟁이 반도체를 중심으로 격화되면서 국내 기업들까지 어느 생태계에 설지 선택을 강요하는 현실을 드러낸다는 지적이다.
18일 외신 보도 등을 종합하면 중국 인터넷정보판공실(CAV)는 최근 바이트댄스·알리바바 등 주요 기업에 엔비디아의 중국 전용 신형 칩인 RTX 프로 6000D의 시험·주문 중단을 지시했다. 엔비디아가 수출 제한을 피하기 위해 별도로 설계한 제품조차 거부하면서, 중국은 “국산 칩으로도 충분하다”는 자신감을 공개적으로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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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슨 황 엔비디아 CEO [사진=AP연합뉴스] |
실제로 엔비디아가 중국 전용으로 내놓은 RTX 6000D는 고성능 메모리 대신 일반 GDDR을 탑재해 성능이 기대에 못 미쳤고, 중국 기업들로부터 외면받아왔다. 결과적으로 이번 조치는 엔비디아가 아닌 화웨이·캠브리콘 등 중국 토종 반도체 업체들에 승부의 추가 기우는 국면을 보여준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중국은 내년까지 AI 칩 생산량을 3배 이상 확대할 계획이다. 이번 조치는 엔비디아에도 뼈아픈 타격이다. 전체 매출의 20~25%가량을 중국에서 의존해왔던 엔비디아는 이제 중국을 재무 전망에서 제외해야 할 상황에 몰렸다.
젠슨 황 CEO가 “중국 사업은 롤러코스터와 같다”며 실망을 드러낸 것도 이 때문이다.
미국의 규제가 단순히 중국의 AI 기술을 억제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립 속도를 끌어올리는 역설적 효과를 낳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미국과 서방은 고대역폭메모리(HBM)를 탑재한 초고성능 AI 칩을 중심으로 독자 생태계를 구축하고 있다. 이와 대조적으로 중국은 일반 GDDR 기반의 국산 칩을 대체재로 삼아 독자적 체제를 강화하는 모습이다.
시장은 이 같은 흐름이 결국 AI 반도체 시장을 스마트폰 운영체제(OS)처럼 양극화된 표준 체제로 고착시킬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나아가 각 진영이 독자 생태계를 구축하면서 글로벌 기업들에게 특정 체제에 종속될 수밖에 없는 구조적 선택을 강요할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된다.
전문가들은 이번 조치가 한국에도 적지 않은 파급효과를 미칠 것으로 보고 있다. 서방 진영이 HBM을 중심으로 생태계를 강화하면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는 새로운 기회가 열릴 수 있다.
반면 중국이 자국산 GDDR 칩으로 독자 노선을 강화할 경우, 한국 반도체 기업의 대(對)중국 수출 의존도는 리스크로 부각될 수 있다.
한국의 반도체 수출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여전히 40%를 웃돈다.
업계 관계자는 “한국은 메모리 초강자지만, 글로벌 공급망 양극화 속에서 어느 진영에 설지 압박이 커질 수밖에 없다”며 “AI 칩 전쟁은 한국 반도체 전략의 시험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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