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치 당원 쉰들러는 ‘의인’, 임정 고문 김가진은 보류…보훈부 공청회가 남긴 화두

이정우 기자 / 2026-06-29 12:39:01
- 국가보훈부 ‘독립유공자 공적 재평가’ 공청회 개최…김가진 선생 서훈 보류 논란 재조명
- 오스카 쉰들러 사례와 대비되는 공과 평가 쟁점…‘행적의 흠결’보다 ‘결정적 선택’ 보는 기준 필요
 (좌)김가진 선생(사진=동농문화재단)과 (우)오스카 쉰들러
[HBN뉴스 = 이정우 기자] 국가보훈부가 독립유공자 공적 재평가와 포상 심사기준을 공개 논의의 장으로 올렸다. 광복 80주년을 앞둔 한국 사회는 나치 당원이던 오스카 쉰들러가 ‘의인’으로 인정된 역사적 판단과 대한민국임시정부 고문을 지낸 동농 김가진 선생의 서훈 보류 사례를 함께 보며 독립유공자 심사의 기준을 다시 묻고 있다.


■ 국가보훈부 공청회가 꺼낸 독립유공자 재평가 의제
국가보훈부는 지난 23일 서울 백범김구기념관에서 ‘독립유공자 공적 재평가와 포상 심사기준 공청회’를 개최했다. 공청회는 독립유공자 공적 재평가와 포상 심사기준을 공개적으로 논의하기 위해 마련됐다.

공청회에는 권오을 국가보훈부 장관과 이종찬 광복회장, 학계 전문가, 기념사업회 관계자, 독립유공자 후손, 시민단체 관계자 등 100여 명이 참석했다. 이동일 국가보훈부 공훈심사과장은 독립유공자 공적 재평가 방안을 발표했고 박경목 충남대학교 교수와 윤해동 한양대학교 대우교수는 포상 심사기준에 대한 제언을 내놨다.

논의의 초점은 두 갈래로 모였다. 하나는 이미 포상된 독립유공자의 공적을 새 자료와 연구 성과에 따라 다시 볼 수 있느냐와 다른 하나는 독립운동 공적이 확인됐지만 과거 이력이나 사후 행적 논란 때문에 포상에서 제외된 인물에게 어떤 기준을 적용할 것인가로 구분된다.

이동일 과장은 1970년대 이전 훈격이 부여된 2등급과 3등급 포상자를 우선 검토하는 방안을 설명했다. 당시에는 독립운동 관련 자료와 연구가 충분하지 않았기 때문에 추가로 확인된 공적을 반영해 훈격을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내용이다.

미포상자 문제도 주요 쟁점으로 떠올랐다. 박경목 교수는 사후 행적이 불분명하다는 이유로 포상되지 못한 사례가 상당수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윤해동 교수도 독립운동 이력이 있는 인물을 이후 경력만으로 일률 배제하는 기준을 다시 살펴야 한다고 제안했다. 강제성과 시대적 맥락을 함께 보는 포용적 기준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이번 공청회가 의미 있는 이유는 심사기준 논의를 행정 내부에서 공론장으로 옮겼다는 데 있다. 독립유공자 포상은 개인의 명예 회복에 그치지 않는다. 국가가 어떤 독립운동을 기억하고 어떤 희생을 공적으로 인정할지 정하는 역사적 판단이다.

■ ‘의인’ 쉰들러와 김가진 선생 보류가 보여주는 평가의 간극
오스카 쉰들러 사례는 흠결이 있는 생애라도 결정적 선택과 실질적 구조 행위가 역사적 평가를 바꿀 수 있음을 보여준다. 쉰들러는 나치당원이자 전시 군수사업가로 출발했다. 독일 점령지에서 공장을 운영하며 유대인 강제노동을 활용한 인물이기도 했다.

그러나 쉰들러는 전쟁 과정에서 나치의 학살과 폭력을 목격한 뒤 자신의 공장과 영향력을 이용해 유대인 노동자들을 보호했다. 1000명이 넘는 유대인이 그의 개입으로 생존했다. 전쟁 초기의 기회주의와 체제 협력 논란에도 불구하고 쉰들러는 훗날 ‘열방의 의인’으로 인정됐다.

쉰들러의 명예 회복도 곧바로 이뤄진 것은 아니었다. 일부 생존자는 구조 활동을 증언했지만 전쟁 초기 행적을 문제 삼는 주장도 있었다. 야드바셈은 한때 공식 인정을 보류했다가 1993년 오스카 쉰들러와 에밀리 쉰들러를 ‘열방의 의인’으로 인정했다. 이 과정은 한 사람의 생애를 평가할 때 흠결과 공적을 함께 검토하는 절차가 얼마나 어려운지 보여준다.

김가진 선생 사례는 한국 독립유공자 서훈 심사의 난점을 압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김가진 선생은 대한제국 대신을 지낸 뒤 대한민국임시정부로 망명했고 북로군정서 고문으로 활동했다. 유족 측은 독립협회 활동, 대한협회 회장, 조선민족대동단 창설과 총재 취임, 의친왕 망명 추진, 독립선언서 작성, 독립운동자금 모집 등을 공적으로 제시해 왔다.

그럼에도 김가진 선생은 독립유공자 서훈을 받지 못했다. 유족 측 신청에 따라 여러 차례 심사가 진행됐지만 결론은 보류였다. 일제가 1910년 김가진 선생에게 남작 작위를 수여한 사실과 대한제국 시절 의병 탄압 의혹, 친일적 언사 논란 등이 걸림돌로 거론돼 왔다.

유족과 일부 연구자는 이 같은 평가에 반론을 제기한다. 일제의 작위 수여는 조선 엘리트를 회유하기 위한 일방적 조치였다는 주장이다. 의병 탄압 의혹도 사실관계가 다르거나 과장됐다는 반박이 나온다. 김가진 선생이 1923년 별세한 뒤 대한민국임시정부 장례로 추모됐다는 점은 말년의 선택과 독립운동 진영의 평가를 보여주는 근거로 제시된다.

쉰들러와 김가진 선생을 단순 비교할 수는 없다. 홀로코스트 구조자 인정 제도와 한국의 독립유공자 서훈 제도는 역사적 배경과 법적 구조가 다르다. 쉰들러는 유대인 구조라는 직접 행위와 생존자 증언이 강하게 남아 있었다. 김가진 선생은 대한제국 고위 관료 경력과 일제 작위 수여, 독립운동 공적, 의혹 반박 자료를 함께 검토해야 한다.

비교의 핵심은 결과가 아니라 판단 방식이다. 쉰들러 사례는 과거의 흠결만으로 한 사람의 최종적 선택을 지울 수 없다는 점을, 김가진 선생 사례는 독립운동 공적이 제시돼도 과거 이력과 의혹이 남아 있으면 심사가 장기간 멈출 수 있음을 보여준다. 두 사례는 국가가 한 사람의 생애를 평가할 때 ‘어디에 속했는가’와 ‘결정적 순간 무엇을 했는가’를 함께 봐야 한다는 질문으로 만난다.

  국가보훈부는 지난 23일 독립유공자 공적 재평가와 포상 심의기준 공청회를 개최했다.ⓒHBN뉴스
■ 독립유공자 심사기준은 어떻게 달라져야 하나
국가보훈부는 독립유공자 심사가 단순한 수형 기간 계산에 있지 않다고 설명하고 있다. 독립운동의 참여 정도와 당시 지위, 독립운동사에 미친 영향 등을 종합해 포상 여부와 훈격을 정한다는 것이다. 독립운동은 오랜 기간 다양한 방식으로 전개됐기 때문에 획일적 기준으로 평가하기 어렵다는 전제도 있다.

문제는 이 종합 평가 원칙이 실제 심사에서 얼마나 투명하게 작동하느냐다. 재판기록과 경찰 문서, 수형 자료는 독립운동의 탄압과 희생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료다. 그러나 일제의 체포와 처벌 기록에 무게가 과도하게 실리면 붙잡히지 않고 독립을 위해 움직인 활동은 평가가 가벼워 질 수도 있다.

독립운동에는 기록을 남기지 않는 것이 임무였던 영역이 있었다. 군자금을 지원하거나 운반한 사람, 연락망을 유지한 사람, 피신처를 제공한 사람, 해외에서 외교와 선전 활동을 맡은 사람은 일제의 감시망을 피해야 했다. 이들의 활동은 사료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뒤로 밀릴 수 있다.

새로운 심사기준은 ‘감옥에 얼마나 있었는가’를 버리는 방식이 되어서는 안 된다. 옥고와 순국은 독립운동의 중대한 희생이다. 다만 옥고가 없는 활동을 낮게 보거나 기록 부족을 곧 공적 부족으로 환산하는 방식은 독립운동의 다층성을 반영하지 못한다.

필요한 기준은 관대한 면죄부도 기계적 배제도 아니다. 확인된 흠결은 숨기지 말고 검토해야 한다. 독립운동 공적도 같은 무게로 검증해야 한다. 의혹이 사실인지, 시대적 강제성은 있었는지, 후일 행적이 어떤 방향으로 귀결됐는지, 당대 독립운동 진영이 그 인물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까지 종합적으로 살펴야 한다.

심사 공개성도 함께 강화돼야 한다. 신청인과 후손에게는 어떤 자료가 검토됐고 어떤 쟁점이 결정에 영향을 미쳤는지 설명돼야 한다. 국민에게는 수형 기간, 활동 기간, 조직 내 지위, 독립운동사 기여, 이후 행적, 강제성, 전향 또는 변절 여부를 어떻게 조합해 판단하는지 원칙이 공개돼야 한다.

회의 전체를 공개하지 않더라도 결정의 이유와 기준은 공개할 수 있다. 독립유공자 포상제도는 국가가 누구를 기리는지 정하는 제도다. 동시에 어떤 행위를 독립운동으로 인정할지 국민에게 설명하는 제도다. 기록이 많은 사람만 인정받고 기록을 남기지 않기 위해 움직인 사람은 배제된다면 일제의 문서가 대한민국의 역사 판단을 대신하는 모순이 생긴다.

국가보훈부 공청회는 이 문제를 공론장에 올린 출발점이다. 김가진 선생의 서훈 보류와 쉰들러의 ‘의인’ 인정은 서로 다른 역사에서 나온 사례지만 같은 질문을 던진다. 국가는 한 사람의 생애를 평가할 때 흠결의 존재만 볼 것인가. 아니면 결정적 선택과 실질적 기여까지 함께 볼 것인가. 보훈부의 평가에 의해 또 다른 ‘의인’이 기억될 수도, 잊혀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독립유공자 포상제도의 다음 단계는 이 질문에 공개적이고 일관된 답을 내놓는 데서 시작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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