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에서 참여로… 공동체적 평화의 시작
-천일의 시간, 간절함이 쌓여 이루는 변화
☞ 전(前)회에 이어서...
[HBN뉴스 = 이정우 기자] 전쟁은 총성이 멎는 순간 끝나는 것이 아니다. 그 뒤에 남는 것은 보이지 않는 상처, 그리고 말하지 못한 고통이다. 한반도의 역사는 그 상처 위에 서 있다. 외세의 침탈과 동족상잔의 비극을 지나며 이 땅에는 수많은 생명이 스러졌고, 그들의 이름은 기록되지 못한 채 시간 속으로 흩어졌다. 그러나 사라진 것은 이름일 뿐, 그 고통과 원한은 여전히 이 땅 어딘가에 머물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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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심 종정의 ‘천일기도’는 바로 이 보이지 않는 상처를 향해 있다. 단순한 추모를 넘어, 풀리지 않은 원(寃)을 마주하고 그것을 풀어내려는 간절한 수행이다. 종정 스님은 “씻지 않은 아픔은 사라지지 않고, 남겨진 상처는 또 다른 고통을 낳는다”고 말한다. 이는 과거를 덮어두는 방식으로는 결코 평화에 이를 수 없다는 단정한 인식이다.
불교는 오래전부터 이러한 고통을 ‘해원(解寃)’과 ‘천도(遷度)’의 길로 풀어왔다. 억울하게 생을 마친 영혼의 한을 풀고, 그들을 바른 길로 인도하는 일. 그러나 그 본질은 죽은 이를 위한 의례에 머물지 않는다. 그 과정을 통해 살아 있는 이들의 마음 또한 비워지고, 얽힌 감정이 풀리며, 비로소 새로운 관계가 시작된다.
한반도의 분단 역시 그러한 맥락에서 다시 보아야 한다. 전쟁은 멈췄지만, 그 속에서 쌓인 원한과 슬픔은 충분히 풀리지 못했다. 그래서 갈등은 사라지지 않고, 다른 모습으로 반복된다. 눈에 보이는 경계선보다 더 단단한 것은 마음속의 경계이기 때문이다.
묘심 종정의 천일기도는 이 악순환을 끊기 위한 시도다. 과거를 지우는 것이 아니라, 온전히 마주하고, 그 위에서 다시 시작하겠다는 다짐이다.
특히 이번 발원이 지닌 무게는 개인의 수행을 넘어선다는 데 있다. 이는 특정 종단이나 신앙의 문제가 아니라, 이 땅을 살아가는 모두가 함께 짊어져야 할 역사적 과제라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전쟁의 희생은 개인의 불행이면서 동시에 시대 전체의 비극이기 때문이다.
종정 스님은 “기도는 혼자서 시작할 수 있지만, 그 완성은 함께할 때 이루어진다”고 강조한다. 이 말은 이번 천일기도의 본질을 보여준다. 한 사람의 간절함이 많은 이들의 마음과 만나고, 그 마음이 다시 공동체의 염원으로 확장될 때 비로소 기도는 힘을 얻는다.
오늘의 사회는 빠르게 흘러가지만, 그 속에서 우리는 종종 가장 중요한 것을 놓친다. 상처를 돌아보는 시간,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 그리고 함께 아파할 수 있는 마음이다. 이러한 것들이 사라질 때 갈등은 깊어지고, 분열은 일상이 된다.
천일기도는 바로 이 지점을 되돌아보게 한다. 잠시 멈추어, 우리가 어디에 서 있는지, 무엇을 놓치고 있는지를 묻게 한다.
기도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그 울림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 그리고 그 마음이 모일 때, 비로소 변화는 시작된다. 거창한 행동이 아니라, 작은 공감과 참여가 이어질 때, 그것이 곧 평화를 향한 첫걸음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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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지난 3월 中 '빙의' 저자 묘심 종정이 (세계경제TV-미디어&라이프) 방송에 출연해 빙의와 관련해 대담을 나누고 있다. |
묘심 종정의 발원은 단순한 종교적 행위가 아니다. 그것은 이 시대를 향한 요청이며, 우리 모두를 향한 질문이다. 우리는 과연 이 아픔을 외면하지 않고 마주할 수 있는가 묻는다 그리고 그 상처를 함께 풀어낼 용기를 가지고 있는가.
천년의 시간이 쌓아온 상처는 하루아침에 사라지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을 씻어내기 위한 시작은, 바로 지금 이 순간일 수 있다.
묘심 종정의 ‘천일기도’ 이 기도는 그 시작일 뿐이다. 그리고 그 완성에는 우리 모두의 마음 깊은 곳에서 자리 잡고 있는 작은 공감과 참여는 평화를 향한 상처를 함께 풀어 낼 용기의 첫 걸음이 모여 인류 평화와 세상의 상처, 치료와 치유는 공동체의 염원으로 번질 것으로 보여진다. <한반도 천년의 상처, 치유의 길> ☞다음 회에 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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