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광양,'시민 화합 걷기 Day’ … 시민과 함께 걷겠다 던 정치인들, 왜 먼저 사라졌나??

강승호 기자 / 2026-09-22 22:39:25
-기자의 눈에 들어온 것은 정작 ‘화합’보다 '선출직'이 사라지는 묘한 장면
-시민들은 행사가 끝날 때까지 시민 곁을 지키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한다.

 지난 19일 광양읍 서천운동장 일원에서 시민 500여 명이 참여한 ‘광양시민 화합걷기 Day’가 열렸다. 광양시는 이 행사의 취지를 가족과 이웃이 함께 걷고 소통하며 평등과 화합의 가치를 되새기는 데 있다고 설명했다. 참가자들은 ‘평등의 길’과 ‘화합의 길’ 두 코스를 걸었다.

 

그런데 현장에서 기자의 눈에 들어온 것은 정작 ‘화합’보다 묘한 장면이었다. 행사 시작 전까지만 해도 시장을 비롯한 선출직 인사들은 시민들과 악수를 나누고 인사를 건네며 행사장 앞을 분주하게 오갔다. 내빈 소개가 진행될 때도 앞자리는 빈틈없이 채워졌다. 마이크가 잡히고 이름이 호명되는 순간까지는 ‘시민 곁’이었다.

 

하지만 공식 순서가 끝나고 시민들이 실제 걷기 시작하자 분위기는 달라졌다. 행사장에 있던 일부 선출직 인사들이 자리를 떠났고, 시민들과 함께 코스를 걸으며 현장을 살피는 모습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물론 개인별 일정이나 불가피한 사정이 있었을 가능성은 있다. 그래서 현장 취재기자가 쉽게 단정할 수 없는 부분도 있다.

 

그러나 시민들이 묻는 질문은 간단하다.  “시민 화합을 위해 마련된 걷기 행사라면, 왜 시민들이 걷기 시작할 때 정치인들은 사라지는가.” 이 질문을 단순히 행사 하나의 풍경으로만 치부하기에는 씁쓸한 구석이 있다.

 

선출직은 선거철이면 시민 곁을 강조한다. 시장과 국회의원, 도의원, 시의원 할 것 없이 시장을 돌고 골목을 누비며 “시민을 위해 뛰겠다”고 말한다. 그러나 선거가 끝난 뒤 시민과 함께하는 자리에 얼마나 오래 머무는지는 또 다른 문제다.

 △사진=광양시

 

 시민들은 이제 악수 한 번보다 함께 걷는 모습을 원한다. 기념사진 한 장보다 현장의 목소리를 듣는 시간을 원한다. 축사 한마디보다 행사가 끝날 때까지 시민 곁을 지키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한다.

 

특히 이번 행사의 이름은 ‘화합걷기’였다. 두 코스 역시 ‘평등’과 ‘화합’이라는 메시지를 담았다. 광양시가 밝힌 행사 취지대로라면 정치인에게도 시민과 함께 걷는 과정 자체가 행사에서 가장 중요한 시간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정작 시민들이 걸음을 내딛는 순간 자리를 비웠다면, 시민 입장에서는 허탈할 수밖에 없다.

 

한 시민은 현장에서 “행사에 얼굴을 비추는 것과 시민과 함께하는 것은 다른 문제 아니냐”는 취지의 말을 했다. 또 다른 시민은 “선거 때는 그렇게 열심히 찾아오더니 행사 때는 사진 찍고 인사만 하고 가는 것처럼 보여 씁쓸하다”고 했다.

 

이런 목소리가 단순한 불평으로만 들리지 않는 이유는 선출직의 자리가 일반적인 초청 손님과는 다르기 때문이다.

 

선출직은 시민이 뽑은 사람이다. 따라서 시민 행사에 참석하는 것 자체가 정치적 치적이 될 수는 없다. 오히려 시민의 삶을 살피고 현장을 확인하는 것은 맡겨진 책무의 일부에 가깝다.

 

그래서 앞자리에 앉았느냐, 축사를 했느냐보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오래 시민 곁에 있었느냐다.

 

현장에서 끝까지 시민들과 발걸음을 맞춘 박문섭 시의원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 것도 이 때문이다. 특별한 정치적 성과라고 할 일은 아니다. 시민의 대표라면 시민 곁을 걷는 것이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당연한 모습이 오히려 눈에 띄었다는 사실은 지역 정치권이 한번쯤 돌아볼 대목이다.

 

정치의 품격은 의전에서 나오지 않는다. 앞줄에 앉는 자리도, 마이크를 잡는 순서도, 기념사진의 위치도 아니다. 시민이 걸을 때 같이 걷고, 시민이 멈출 때 같이 멈추며, 시민의 말을 끝까지 듣는 데서 정치의 품격은 만들어진다.

 

시민들은 바람처럼 나타났다가 바람처럼 사라지는 선출직을 원하지 않는다. 선거 때만 표를 구하고, 행사 때만 얼굴을 내미는 ‘용두사미 정치’도 더 이상 달갑지 않다.

 

이번 행사가 정치인들에게 작은 숙제가 됐으면 한다.

 

시민 화합을 말하려면 시민과 함께 걸어야 한다. 시민의 삶을 말하려면 현장에 오래 머물러야 한다. 그리고 시민에게 권한을 위임받은 사람이라면 그 권한이 특권이 아니라 책임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시민들은 결국 기억한다. 누가 앞자리에 앉았는지가 아니라, 누가 마지막까지 시민 곁에 남아 있었는지를 자신이 찍혔던 사진 한 장은 행사 당일이면 사라지지만, 시민이 느낀 진정성과 실망은 오래 남는다. 선출직들에게 필요한 것은 또 하나의 의례적인 축사가 아니라 시민과 같은 눈높이에서 끝까지 현장을 지키는 자세다.

 

‘시민과 함께’라는 말이 구호로 끝나지 않기를 바란다. 시민이 걷는 길에 정치인도 함께 걷는 것, 그것이 어쩌면 가장 평범하면서도 가장 어려운 정치의 기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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