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생은 뒷전… 한전, 중소 협력업체와 법정 다툼에 사활 국민的 비판 고조

이정우 기자 / 2025-09-13 20:50:07
-법원 “시험 공정성 문제 있다” 가처분 인용… 한전은 불복해 대형 로펌 선임
-“공기업의 갑질, 상생 저버린 처사”… 법조계·시민사회 일제히 비판
-한국전력, 중소 협력업체와의 법적 공방…‘공기업 갑질’ 논란 확산

[HBN뉴스 = 이정우 기자]  한국전력공사(사장 김동철·이하 한전)가 중소 협력업체와의 소송전을 이어가면서,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기업이 상생을 저버리고 갑질로 군림한다’는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국가 기간산업의 중추이자 독점적 지위를 가진 공기업이 영세 협력사를 상대로 대형 로펌을 앞세운 법적 다툼을 벌이는 모양새는 국민적 상식에도 어긋난다는 지적이다.

 

 이번 논란의 중심에는 배전기자재를 납품해온 A사가 있다. A사는 사람이 들어갈 수 없는 지하 공간의 전력 공급을 위해 쓰이는 ‘지중용 개폐기’를 제작·납품해왔다. 그러나 성능시험 과정에서 한전이 요구한 시료 개수와 시험 절차를 둘러싸고 갈등이 불거졌다.

 

한전은 2019년 강원도 고성 산불 이후 ‘배전기자재 품질등급제’를 강화했다. 산불 원인이 개폐기 불량으로 지목되자, 한전과 전기연구원은 성능시험 항목과 기준을 한층 엄격하게 재정비했다. 이에 따라 납품업체는 시험용 시료를 최소 3대 이상 제출해야 했고, 시험비용은 수천만 원에 달했다. 문제는 시험 성적의 신뢰성과 공정성에 대한 의문이었다. 협력업체들은 “비용 부담은 고스란히 중소기업 몫인데, 시험 결과조차 불투명하다”며 불만을 터뜨렸다.

 

A사는 실제 시험 과정에서 제출한 2대 중 1대가 불합격 판정을 받자, 한전으로부터 기존 납품 제품 14대의 리콜 요청을 받았다. A사는 “정상 가동 중인 제품에 문제가 없다”며 반발했다. 그러나 한전은 입찰 자격 등록 취소라는 초강수를 두었다. 이는 사실상 협력업체에 대한 ‘사형선고’에 가까운 조치였다.

 

A사는 성능시험의 공정성에 문제를 제기하며 법원에 가처분 신청을 냈고, 법원은 이를 받아들였다. 그러나 한전은 이에 불복, 대형 로펌을 선임해 행정소송으로 대응하면서 양측의 갈등은 정면충돌로 번졌다.

 

법조계에서는 한전의 대응이 ‘과도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서초구의 한 변호사는 “공기업이 내부 절차나 협의만으로도 해결할 수 있는 사안을 대형 로펌을 내세워 힘으로 누르려는 것처럼 비친다”며 “이는 명백히 갑질로 해석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만약 소송에서 승산이 뚜렷했다면 굳이 사회적으로 파급력이 큰 대형 로펌을 쓸 필요가 없었을 것”이라며 “한전 내부에서도 사건의 불리함을 의식했기 때문 아니냐”는 분석을 내놓았다.

 

 

 실제 지역사회에서는 “한전이 ‘눈엣가시’로 찍은 중소기업을 본보기 삼아 길들이려는 것 아니냐”는 의심마저 나온다. A사는 한전 실무자들을 상대로 고소·고발을 진행했고, 경찰 조사 과정에서는 대형 로펌 소속 유명 변호사가 직접 변호에 나선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 진행 중인 사건만 5건에 달하며, 한전 측은 대부분에 대형 로펌을 선임한 상태다.

 

문제는 이번 사태가 단순한 기업 간의 법적 다툼을 넘어, 국민의 신뢰와 직결된 공기업의 역할과 책임 문제로 비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공기업은 ‘공공성’과 ‘상생’이라는 사회적 책무를 우선해야 한다. 특히 전력은 국가 안보와 직결되는 분야인 만큼, 중소 협력업체와의 동반 성장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는 지적이 뒤따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전은 거대 조직의 힘을 앞세워 협력업체와 정면 대립을 택했다. 이는 국민 눈높이에서 볼 때 “공기업이 약자에게 법을 무기로 압박한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한전의 태도는 ‘상생의 가치’를 내세우는 정부 정책에도 역행한다”며 “국민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기업이 협력업체를 적대시한다면, 결국 피해는 국민에게 돌아온다”고 꼬집었다.

 

한전은 그간 전기요금 문제, 경영 부실, 고액 연봉 등으로 국민적 비판을 받아왔다. 여기에 협력업체와의 ‘소송전 갑질’까지 겹치면서 ‘공기업의 존재 이유’에 대한 근본적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법조계와 시민사회는 한목소리로 “공기업의 역할은 국민적 신뢰 위에 세워져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번 사건은 단순한 소송 분쟁을 넘어, 대한민국 공기업이 어떤 가치와 태도로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하는지를 가늠하는 시험대가 되고 있다. 국민이 낸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기업이 과연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이 물음에 대한 답변은 결국 한전의 선택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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