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 참정권을 현장에서 박탈한 중대한 헌정사적 사건
민주주의의 꽃은 선거이고, 선거의 생명은 공정성과 신뢰다. 국민은 자신의 주권을 행사하기 위해 투표소를 찾는다. 국가와 선거관리기관은 그 한 표가 어떠한 방해도 없이 행사될 수 있도록 완벽하게 준비해야 한다. 그것은 선택이 아니라 헌법이 부여한 의무다.
그러나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발생한 투표용지 부족 사태는 대한민국 선거 역사에 씻기 어려운 오점을 남기고 있다. 투표소를 찾은 유권자들이 투표용지가 없어 기다리거나 발길을 돌려야 하는 상황이 벌어졌다면 이는 단순한 행정 착오가 아니라 국민의 참정권을 현장에서 박탈한 중대한 헌정사적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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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서울 동작구를 비롯해 송파구, 강남구 등 수도권 곳곳에서 유사한 문제가 발생했다는 사실은 충격적이다. 선거를 총괄하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유권자 수조차 제대로 예측하지 못했다는 것인지, 아니면 준비 부족을 방치한 것인지 국민은 묻고 있다.
이와 관련해 지역구인 동작구에서 직접 사태를 접한 나경원 국회의원의 지적은 결코 가볍게 넘길 수 없는 경고다.
나 의원은 "선거 공정성이 무너졌다"며 "투표용지가 바닥나는 전대미문의 사태가 다수 발생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어 "투표 시간을 밤 10시까지 연장하는 것은 또 다른 위법이자 꼼수"라고 지적하며, 이미 발표된 출구조사의 영향을 받을 수 있는 상황에서 이뤄지는 투표는 선거의 기본 원칙 자체를 훼손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무엇보다 눈여겨봐야 할 대목은 나 의원이 이번 사태를 단순한 관리 부실이 아니라 "유권자의 주권을 원천적으로 침해한 선거 무효 사유"라고 규정한 점이다. 그는 "부실과 의혹으로 얼룩진 투표함을 열어본들 그 결과를 납득할 국민은 없다"며 즉각적인 개표 중단과 재선거를 주장했다.
실제로 선거는 결과보다 과정의 정당성이 우선이다. 승패가 몇 표 차이로 갈렸는지보다 중요한 것은 모든 유권자가 동등한 권리를 보장받았느냐는 것이다. 한 사람의 투표권이라도 침해되었다면 민주주의는 상처를 입는다. 하물며 다수 지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한 문제라면 결코 가볍게 넘어갈 일이 아니다.
나 의원이 언급한 독일 베를린 지방선거 사례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당시 독일 헌법재판소는 투표용지 부족과 선거 관리 부실이 유권자의 권리를 침해했다고 판단해 선거 전체를 무효로 하고 재선거를 명령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선거의 정당성은 결과가 아니라 절차에서 나온다는 준엄한 원칙을 확인한 것이다.
이번 사태를 바라보는 국민의 분노도 바로 그 지점에 있다. 투표용지조차 제대로 준비하지 못한 선거관리기관이 어떻게 공정한 선거를 보장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선관위가 내놓을 해명과 사과만으로는 이미 무너진 신뢰를 되돌리기 어렵다.
노태악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은 더 이상 침묵해서는 안 된다. 국민의 참정권이 침해됐다는 의혹이 전국적으로 제기되고 있다면 최고 책임자로서 국민 앞에 직접 서야 한다. 철저한 진상조사와 책임자 문책은 물론이고, 그 결과에 따라 자신의 거취까지 걸겠다는 각오를 보여야 한다.
선거는 민주주의의 심장이다. 그 심장이 멈추면 국가는 흔들린다. 국민은 지금 묻고 있다. 도대체 누가 이 사태의 책임을 질 것인가.
노태악 위원장은 직을 걸고 답해야 한다. 그것이 국민 주권을 지키는 마지막 책임이며, 무너진 선거 신뢰를 회복하는 최소한의 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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